‘사방을 몇바퀴 돌아봐도/보이는 건 싸늘한 콘크리트 빌딩숲/정든 곳 찾아봐도 하나도 없지만/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그는 고향 장승포를 그리워하면서도 제2의 고향이 되어버린 서울을 사랑하며 노래했다.
윤수일씨처럼 고향을 떠나 서울이나 인천, 수원 등 대도시로 나와 살면서 제2의 고향에 마음을 잡고 사는 사람이 참 많다. 우리의 급격한 산업화는 제2의 고향을 양산한 것이다.
요즘은 반대로 서울 등 대도시를 떠나 지방 농촌에 제2의 고향을 만드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인구가 자꾸만 감소하는 지방의 자치단체에서는 인구 유입책으로 농촌의 빈집을 사서 귀농하는 도시인들에게 건물 수리비까지 지원하는 곳도 많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명지대학 유홍준 석좌교수의 고향은 서울이다. 그는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생을 서울에서 살았고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훗날 문화재청장도 지냈다. 서울내기 유교수가 오래전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에 ‘휴휴당(休休堂)’이라는 집을 지었다. 부여를 제2의 고향으로 삼은 것이다. 부엌 하나에 8평짜리 플라스틱 기와지붕의 ‘휴휴당’은 그 이름에서 느끼듯 ‘다 내려놓고, 쉬고, 또 쉬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돌담길이 제주도를 떠올리게 하는데 유교수의 집도 출입구를 제주도 민가처럼 나무를 걸쳐놓아 더욱 그런 느낌을 자아낸다. 또 주변의 개복숭아 나무, 매실나무, 특히 그가 좋아하는 배롱나무(목백일홍) 등이 어릴 적 외갓집을 찾을 때처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가 이렇게 부여에 ‘휴휴당’을 마련한 데는 역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배경이 됐다. 누적 판매부수 370만권을 기록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집필하면서 전국을 누빌 때 이곳에 끌려 마음을 정한 것.
유홍준교수가 지난달 ‘백제의 향기와 나의 애장품’이라는 타이틀로 자신이 엄선한 100점의 애장품을 공개하는 전시회를 부여문화원에서 열었다. 그 작품들은 유교수가 전국을 답사할 때 수집해 책에 실린 작품과 근대미술의 서화들. 일흔을 바라보는 원로 학자의 모습이 신선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설날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사느라 잊혔던 고향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고향은 어디인가? 오히려 제2의 고향이 ‘고향’이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특히 귀성객 못지않게 자식들이 살고 있는 서울이나 대도시로 올라오는 역귀경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유홍준교수나 가수 윤수일씨처럼 제2의 고향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정치의 타락과 악취에 몸살난 도시인들에게는 그것이 자기의 삶을 보존하기 위한 탈출의 길이기도 하고, 거대 소비사회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아버지들의 고뇌를 푸는 방법이 된 것도 같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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