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에게는 두 번의 ‘한 방’이 있었다. ‘첫 번째 한 방’은 민주당 후보 경선이었다. 2000년은 이회창 대세론이 굳혀졌던 한 해다. 노무현은 간신히 6위권을 형성하는 등외(等外)주자였다. 이랬던 그가 경선을 치르면서 지지율을 높였다. 후보로 확정된 4월, 그의 지지율은 53.8%까지 올랐다. ‘대통령 된 것 같던’ 이회창(30.8%)을 두 배 가깝게 따돌렸다. 한자리 지지율이 경선 두 달여 만에 만들어 낸 후보 확정이었다. ▶‘두 번째 한 방’이 필요했다. 후보 확정과 함께 그의 지지율이 추락했다. 후보 확정(2001년 4월) 때의 53.8%가 45.9%(5월 6일), 24.2%(7월 5일)로 밀려났다. 9월 말 조사에서는 지지율 16.8%로 이회창 후보(31.3%)에 반 토막에 그쳤다. 이때 등장한 이벤트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다. 19%(11월 2일)이던 지지율이 단일화 직후(12월 2일) 43.6%로 올랐다. 그리고 노 후보는 48.5% 득표율로 16대 대통령이 됐다. 지지율 6등 후보가 1년 만에 차지한 대통령직(職)이다. ▶이후 한국 정치에는 전에 없던 유전자가 생겼다. 노무현에게서 학습된 ‘한 방의 추억’이다. 지지율이 극적으로 뒤집힐 것이라는 믿음이 선거판을 휩쓸었다. 하지만, 예외 없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났다. 적어도 우리가 기억하는 큰 선거에서 6등이 1등 되는 ‘한 방’은 노무현 이후 없었다. ‘100년 정당’이라던 열린우리당이 ‘폐족 정당’으로 몰려 연패를 거듭하던 시절. 정장선 당시 의원도 그렇게 말했다. “우리 당은 한 방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는가 했던 ‘한 방의 추억’이 10여 년 만에 꿈틀댄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그 중 하나다. ‘최순실 게이트’로 형성된 주인 없는 정치에서 그는 ‘이재명 한 방’을 만들어가고 있다. 존재감 없던 그가 당내 지지율 2등까지 올랐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노무현 한 방’을 추억한다. 뿐만 아니다. 여권 내 잠룡들도 저마다 ‘한 방의 주인공’을 꿈꾼다. 유승민 의원은 드러내놓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2%대 지지율에서 시작해 뒤집었다”고 얘기했다. ▶때마침 등장한 미국발(發) ‘한 방의 추억’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불과 1년 전 괴변과 독설로 낙인찍힌 등외자였다. 이랬던 그가 공화당 후보가 됐고 대통령이 됐다. 사라져 가던 ‘노무현 한 방’을 살려낸 바다 건너 불쏘시개다. 제2의 노무현! 제2의 트럼프! 지금 대한민국 잠룡들이 틀림없이 꾸고 있을 ‘한 방의 꿈’이다. 다만, 앞선 두 번의 ‘한 방’을 가능하게 했던 소재-노무현의 당당한 진보ㆍ트럼프의 지독한 보수-를 얼마나 채워가고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 방의 추억’에도 최소한의 필요조건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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