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은 검찰 위에 존재한다. 법률적 위치가 그렇고 여론의 눈높이가 그렇다. 박영수 특검에 부여된 여론의 기대치도 그렇다. 검찰이 못한 수사, 혹은 검찰이 안 한 수사를 하라는 국민적 명령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뇌물 수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유일하고도 필연적인 뇌물수사가 답보다. 뇌물혐의 상대방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돌아보면 그 과정에는 특검의 패착이 있었다. “(최순실과 박 대통령의 공모 혐의에 대해)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했다. “영장 내용을 보면 사람들이 기절할 수준”이라고도 했다. 구속의 당위성을 여론에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작 담당 판사는 설득하지 못했다. ‘기절할 수준’의 범죄 사실이 뭔지 뒤에 알려진 바도 없다. 되레 이 부회장 측 호화 변호인단의 방어 태세만 강화시켜 준 꼴이 됐다.
그랬던 특검이 또 말을 앞세웠다. 설 연휴와 관련된 수사 계획을 설명하면서다. 관계자 전언으로 소개된 일정은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의 연휴 중 설 당일인 28일 하루만 쉬고 수사를 계속한다’다. 주목되는 건 이 설명에 따라붙은 청와대 압수수색 계획이다. 특검 관계자는 “현재 수사 진행 상황상 설 이전에 청와대 압수수색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도 앞다퉈 이 말을 전했다.
연휴에 쉬지 않고 수사한다는 설명쯤은 그렇다 치자. 다소 낯간지럽지만, 수사에 대한 특검의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압수수색 언급은 다르다. 압수수색의 기본은 기밀성과 의외성이다. 범죄 혐의자가 알아채지 못한 방법과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시행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 압수수색 시점을 특검은 ‘설 연휴 이후’라며 특정하다시피 밝히고 있다. 통상적 수사와 거리가 멀다.
처음도 아니다. 특검은 출범 이래 청와대 압수수색 계획을 수차례 공언했다. 하지만,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고 시간만 흘렀다. 과연 청와대에 남아 있는 범죄 증거가 있겠는가 싶다. 이런 특검이 또 ‘설 연휴 이후’라며 예고다. 그래서 궁금하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목적이 뭔가. 범죄 증거를 찾으려는 것인가 아니면 요식 행위만 맞추려는 것인가. 많은 이들이 후자 쪽으로 보기 시작했다.
수사 절차, 범죄 혐의에 대한 불필요한 공개가 너무 많다. 지금부터라도 말은 줄이고 행동을 늘리는 특검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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