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노부모의 명절증후군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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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연휴에도 이런 저런 사건ㆍ사고가 있었다. 의정부시에서 혼자 살던 50대 남성이 단독주택 마루에서 잠들었다가 저체온증으로 설날 죽음을 맞았다.

이 남성은 2013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 지내며 생활고를 겪어왔는데 설을 맞아 조카가 떡국을 주러왔다가 숨진 것을 발견했다. 역시 설날 당일 전남 영광에선 가족과 다투고 집을 나가 만취 상태에서 역주행 운전을 해 인명사고를 낸 30대 여성이 입건됐다.

 

29일엔 부부싸움 끝에 40대 남편이 목을 매 숨진 사건도 있었다.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 사는 부부는 전날 경제적 문제로 다퉜고, 남편은 다음날 아내와 자녀들이 집을 비운 사이 자살했다. 30일 새벽엔 전북 익산의 한 도로에서 30대 남편이 주차된 아내의 승용차에 불을 질러 모두 타버렸다. 쓸쓸하고 우울한 소식들이다.

 

가족ㆍ친지들이 모여 화목을 다지고 즐겁게 지내야 할 명절,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가족에겐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평소 갈등이 생겼을 때 충분한 대화로 풀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보니 신체적ㆍ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명절에 묵은 감정들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

 

명절을 지내고 난 뒤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들의 사례는 새삼스럽지 않다. 시가 및 처가와의 갈등이 부부 불화로 이어지고, 깊어진 갈등의 골은 이혼 증가로 이어져 ‘명절 이혼’이란 말까지 생겼다. 명절 이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됐다.

 

이혼이 아니더라도 명절 후유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주부들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가사 노동과 이로 인한 피로감, 고부갈등 등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남편들은 장시간 운전에 처가와의 갈등, 경제적 부담 등으로 힘겨워한다. 취준생이나 결혼 못한 젊은이들도 명절이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더욱 심하게 명절증후군을 겪는 건 고향에 남겨진 부모님이다. 명절이 끝난 후 자식들이 없는 빈자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거나 우울감 때문에 식사도 잘 못하는 부모님이 있다. 만약, 자식들을 떠나보낸 뒤 공허함이 2주 이상 이어지면서 평소보다 소화도 잘 안되고, 두통을 호소한다면 명절증후군에 의한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안부 전화를 자주 드려 부모님의 건강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부모님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는 경향이 있어 혼자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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