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끝나도 악몽은 여전 ‘그 날’ 이후로 무너진 행복
하지만 이같은 범죄의 반대편에는 숨죽여 울고 있는 약자, ‘피해자’가 존재한다. 내일의 피해자는 어쩌면 남이 아닌 나일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지만, 우리는 자극만을 쫓으며 어느 순간 피해자의 고통을 묵인한다. 본보는 4회에 걸쳐 소외받는 피해자의 삶을 조명하고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진단한다. 편집자주
의정부에서 90대 노모와 단둘이 족발집을 운영했던 A씨(61)는 지난 2014년 11월9일 밤 9시 이후 삶이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술에 취한 취객이 가게 앞에서 행패를 부렸는데, 이를 말리던 90대 노모가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악몽은 시작됐다.
폭행으로 노모는 한쪽 어깨뼈가 산산조각 났고, 병원 측은 나이가 많아 노모의 어깨 수술이 어렵다며 치료에 난색을 보였다. 후유증으로 노모는 지금까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할머니 손맛’으로 유명했던 족발집은 아들 혼자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느 날 갑자기 A씨는 가게 부엌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가게 운영과 간병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초래한 화(禍)였다.
가게는 이듬해 6월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월세를 못 내니 가게 보증금 2천만 원은 고스란히 날려야만 했다. 현재 A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A씨는 “한때는 순수 월 200만 원은 벌었는데, 지금은 사는 셋방도 나가야 할 처지”라며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차분한 그의 말투에는 사막의 황량함이 묻어날 만큼 생동감이라곤 찾기 어려웠다.
이처럼 매일 수많은 각종 범죄 사건·사고들이 발생하고 있고, 가해자 수만큼 동전의 양면처럼 고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발생한 강력 및 폭력범죄는 39만8천544건이다. 경찰은 이에 따른 실질적 피해자에 대한 추정을 해당 범행 발생 건수에 4를 곱하는 방식(4인 가구 기준)으로 그 수를 추정(159만4천176명)한다. 범죄 피해에 따른 고통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도 해당되며, 집계되지 않은 사고까지 더하면 해마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범죄피해자의 45% 정도는 사건·사고 발생 이전보다 생계가 더욱 곤란해진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원은 치료 및 재활비, 간병비, 이사비용은 물론 휴직이나 실직 등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A씨처럼 생계 전반에 큰 타격을 입는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갑작스럽게 피해를 봐 경제적 파탄에 빠지고 이후 삶이 악순환 굴레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의정부=조철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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