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과 고등학교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에 노동계가 가세한 이 사태는 ‘혁명’ 직전까지 몰고 갔다. 명문 소르본 대학이 포위된 채 최루탄과 투석전이 치열했고, 파리의 대학가 라탱지구에서는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긴장이 계속됐다. 1천만명의 노동자가 합류하여 파업까지 벌였으니 그 심각성을 짐작할 만 하다.
그런데 끝장을 봐야 풀릴 것 같은 사태는 2주 만에 조용히 막을 내렸다. 군대가 동원된 것도 아닌데 노동계는 학생들의 주장에 회의를 갖게 됐고, 드골 대통령은 조기 총선을 내걸었으며 급기야 학생들의 시위도 동력을 잃고 강의실로 돌아왔다. 노동자, 학생 모두가 프랑스 사람 특유의 이성으로 돌아간 것이며 2주간의 ‘프랑스 마비’도 풀려나고 말았다. 이듬해 드골은 미련없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고 퐁피두가 대통령을 이어받았다.
‘끝장을 봐야 풀릴 것’ 같은 사태가 2주를 넘기지 않고 조용히 끝났음도 그렇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긴장 속에서도 정부부처나 심지어 지방에서도 전혀 동요없이 일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와 수출입을 하던 한 기업인은 뉴스로 접하는 프랑스 사태에 매우 불안해했으나 관계부처를 방문하면 장관이 바뀌건 말건 상관없이 모든 업무가 정상적으로 처리되는데 크게 놀랐다고 했다. 자연히 그 나라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뿐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정권의 바람을 타지 않고 철저하게 운영되는 엘리트 관료제도에 의해 동요없이 국정이 수행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일본을 ‘일본 주식회사’라고할까.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가? 요즘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건강보험료 산정기준 개혁을 다루는 보건복지부와 AI(고병원성 조류독감) 때문에 미국 달걀 수입을 다루는 농수산식품부 밖에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정부의 일 중 이것 말고는 특별히 국민의 시선을 끄는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탄핵정국에 최순실게이트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에게 중국은 무역압력으로 갑질을 하고, 일본은 대사 소환, 독도영유권 등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우리 관계부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트럼프 미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에 어쩔 수 없이 우리 현대자동차도 대미투자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등 대미 수출전선이 긴박한 상황인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더욱이 경제대국들의 기업들이 연초부터 세계시장을 숨 가쁘게 뛰고 있는데 우리의 대기업 총수들은 ‘출국금지’ 등으로 발이 묶여있다.
또 내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러야 할 주무 부서인 문화관광체육부는 사상 초유의 장관 구속 등 쑥대밭이 되었다. 그리고 대국민 사과성명까지 나왔다. 민생을 이구동성으로 부르짖던 국회도 지금 ‘최순실’밖에 보이지 않는다.
뉴스 역시 ‘특검’과 ‘트럼프’로 가득 찰뿐, 약동하는 대한민국의 심장이 느껴지질 않는다. 참으로 답답하다. 그나마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군 장병들이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고지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