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다’는 동사예요. 동사는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서술어 품사고요. ‘자라다’는 여러 사전적 의미들 중에서 “생물이 생장하거나 성숙하여지다.”를 생각하게 하지요.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잖아요. 그러니 이 동사의 주어는 ‘나무’가 분명하겠죠!
한 발 더 들어가 볼까요? 이 작품은 2008년 1월 26부터 2월 3일까지 경기도 가평의 북한강 자라섬에서 바깥미술회 정기전으로 열린 ‘바깥미술_대지의 신명’에 설치됐어요. 정보가 많지요. 우선 전시 기간이 한겨울이에요. 장소는 북한강 자라섬이고 미술동인은 ‘바깥미술회’라는 사실.
이런 정보들은 마치 어떤 사건의 증거들처럼 작품을 해석하는 단초를 제공해요.
‘바깥미술회’는 1981년 1월 15일, 경기도 가평군 대성리 화랑포 북한강 강변에서 ‘겨울·대성리·31인’전으로 탄생했어요. 미술이 주축이었으나 연극과 음악 장르의 예술인들도 참여했던 다원예술 경향의 실험적 전시였다고 볼 수 있어요.
눈 내린 겨울 강가의 흰 풍경 속으로 잠입하듯 그곳에 설치한 작품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고, 작가들 또한 그 풍경의 성소에서 예술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민낯의 미학을 창조했죠.
그때나 지금이나 바깥미술회는 가장 추운 시기에 전시를 해요. 그 시기는 198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비롯됐죠. 그들은 그 시대가 빼앗긴 들의 봄처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봄, 즉 겨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겨울의 ‘바깥’에서 그들은 예술의 자율성을 실험했던 것이고요.
36년이 지났어도 바깥미술회의 정신은 크게 변한 게 없어요. 굳이 변화를 찾는다면 자연·생태·환경의 문제를 더 많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고 그래서 그런 주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 있을 뿐이죠.
다시 정혜령 작가의 ‘자라다’로 가 볼까요? 자라섬은 자라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그런데 순전히 이름으로만 보면 자라섬은 ‘자라는 섬’도 되고 ‘잠자라는 섬’도 될 뿐 아니라, ‘자라들의 섬’도 되죠. 작가는 아마도 ‘자라는 섬’을 상상했던 것 같아요.
2005년에 처음 바깥미술회가 자라섬으로 갔을 때 그곳은 그야말로 야생의 습지 그대로였어요. 여름 홍수에 늘 물에 잠기는 자람섬의 생태계는 습지형 생태계였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군에서는 그 습지형 풀들과 나무들을 잘라내고 복토(흙덮기)를 시작하더군요.
2008년 1월의 자라섬은 여름 홍수에도 물에 잠기지 않을 만큼 솟아올랐죠. 작가는 거기에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사라져간 나무들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나무젓가락으로 나무를 만들었죠. 순식간에 자라난 나무인양. 생장이 멈춘 섬이 자라는 것처럼.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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