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공직자들이 말하는 역대 지사들의 스타일이 있다. ‘임사빈은 정이 많았던 도지사다’ ‘임창렬은 일을 많이 했던 도지사다’ ‘김문수는 부지런했던 도지사다’…. 모두가 동의하는 정의(定義)는 아니다. 다수가 내리는 중론(衆論)일 뿐이다. 그래도 이런 평들이 모여 도백의 야사(野史)를 이룬다. 이인제 전 지사에 내려지는 중론도 있다. ‘가장 일하기 편했던 지사’다. 서류 대신 얼굴을 보며 결제했다는 일화가 많다. 서류 검토를 대신한 “잘 한 거지?”라는 덕담을 전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그가 남긴 또 다른 기록이 있다. 경기도지사를 처음으로 소권(小權)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YS(김영삼 대통령)의 ‘깜짝 놀랄 40대 후보’ 발언이 단초였다. 경기도지사 관사는 대선 후보의 캠프였다. 모든 일정은 도지사 아닌 대권 후보의 것으로 채워졌다. 결국, 임기를 중단하고 대선판으로 갔다. 경기도민에겐 느닷없이 닥친 도백 없는 도정이었다. ‘가장 일하기 편했던 이인제 시절’에는 그렇게 ‘가장 정치로 뒤흔들렸던 이인제 시절’이란 이면이 있다. ▶그 후 정치인 이인제가 만들어온 이력은 화려하다. 네번의 국회의원을 했다. 집권당의 최고위원도 했다. 무엇보다 대통령 선거마다 자타칭 후보로 거론됐다. 그 중 두 번은 본선까지 갔다. 그에겐 이제 ‘전 국회의원’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전 대선 후보’라는 중량감 있는 이력이 붙어 있다. 이번에도 출마했다. 어제(13일), TV 토론회에 나왔다. MBC ‘대선 후보를 검증한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름에 따라붙은 대표 이력이 눈길을 끌었다. 틀림없이 그가 방송사에 요구해서 선택됐을 대표 이력이다. ‘이인제-전 경기도지사’. ▶강산이 두 번 변했을 20년 전의 경기지사다. 막 투표권을 얻은 20대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도지사다. 그렇게 오래된 과거의 직함을 그가 들고 나왔다. 국회의원, 최고위원, 대선 후보 등 화려한 이력을 제쳐 두고 선택한 이력이다. 민선 중 가장 오래전 지사, 임기를 가장 빨리 그만둔 도지사, 도정에 가장 관심 없던 도지사가 20년 만에 꺼내 든 ‘전 경기도지사’라는 이력이다. 많은 이들이 어색하다고 말한다. ▶지금 대선은 전직 경기도지사들 판이다. 이인제 전 경기지사,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그리고 남경필 현 경기지사가 후보다. 출신별 점유율에선 타 업종을 압도한다. 아마도 그도 이런 흐름을 따른 듯 보인다. 욕 듣는 새누리당 최고위원보다 1,300만 인구를 가진 경기도 경력이 무난하다고 본 모양이다. 누가 뭐랄 수 없는 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런 대선판을 보는 도민 마음이 편치 않다. 지지율 1~2%마다 따라붙은 ‘전 경기지사’를 보는 도민 마음이 편치 않다. 신물을 내는 도민이 많다. ‘제발 경기지사 팔이 좀 그만하라’는 도민도 많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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