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발표했다. 갈수록 침체 되는 내수 시장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다. ‘가족과 함께 하는 날’을 지정했다. 일찍 퇴근해 외식하라는 취지다. 봄 여행 주간도 운영키로 했다. 관광지를 찾아 소비해달라는 취지다. 임금 체불 방지를 위한 대책도 내놨다. 봉급을 제때 줘서 시장으로 흘러가도록 한다는 취지다. 이 밖에도 다양한 대책이 발표됐다. 방안 곳곳에서 내수 경제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그만큼 나라 경제가 어렵다. 내수 침체가 국가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책의 우선순위도 효율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이때의 효율성은 현장 밀착성과 정책 지속성이다. 현장에서 그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하고, 시장의 순환구조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현장의 목소리라 함은 내수 주체인 시장의 목소리다. 지난해 연말 이후 가장 큰 시장의 목소리는 김영란법(부정청탁방지법)의 시행령 개정이다.
김영란법이 미치는 부정적 요소는 다양한 지표로 확인된다. 올 설 명절에서 김영란법 선물가액 5만원을 넘는 선물세트 매출은 22.9% 줄었다. 5만원을 넘지 않는 선물세트 매출도 3% 줄었다. 법 시행 이후 외식업계 매출은 20% 이상 줄었다. 외식업 경기지수가 65까지 떨어졌다. 육류와 화훼 농가의 위기는 이제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이러다 보니 일자리도 사라졌다. 음식점 주점 종사자 수는 법 시행 이후 매달 3만명 이상씩 줄어들고 있다.
모든 지표는 정부와 공적 기관의 것이다. 농림부, 고용노동부, 유통공사, 중기청 등이 갖고 있는 통계다. 정부도 그 심각성을 익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23일자 내수활성화 대책에는 이 부분이 빠졌다. 즉시 효과가 기대되는 허용 가액 한도에 손도 대지 않았다. 정부 발표에 기대를 걸었던 중소상공인들의 실망이 크다. 기획재정부 차관은 “법의 근본적인 취지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모범답안을 마련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 스스로 김영란법의 한계, 즉 부패와 반(反)부패라는 선명성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결과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김영란법의 근본취지에 ‘5만원’은 부합하고 ‘6만원’은 어긋난다는 기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4만원 식사’는 정의롭고 ‘6만원 식사’는 정의롭지 않다는 근거는 또 누가 정하는 것인가. 김영란법을 폐지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현실적이지 못한 시행령을 손 봐달라는 것이다. 입법 목적이 아닌 법률 적용의 영역이다.
대신 내놓은 청탁금지법 영향 업종 지원책도 어불성설이다. 내수 시장 활성화의 기본은 경제 유통을 위한 구조적 개선이다. 그런데 그런 모순은 그대로 두고 부족한 돈을 혈세로 채워주겠다는 얘기다. 그나마 저리 융자라는 간접 지원책이다. ‘다 죽는다’는 상인에게 빚을 더 쓰라는 얘기다. 완전히 잘못된 대책 아닌가. 정부가 김영란법으로 초토화된 내수 시장의 본질과 심각성을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아니면 일부러 눈 감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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