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과·배 재고 산더미, 썩힐판인데 대책 없나

과수 농가와 유통센터 저장고마다 사과ㆍ배 등 안 팔린 과일이 넘쳐난다고 한다. 설 대목에 선물 수요가 줄면서 쌓이고, 과일을 사 먹는 소비자가 줄면서 더 쌓이고, 값을 내려 팔아도 더 싼 수입과일에 밀려 또 쌓이고…. 그러다 보니 과일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이대로 가다간 썩혀 버릴 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특별한 대책 하나 나온 게 없다.

전국적으로 설 과일 판매 금액은 총 303억원으로 지난해 설의 375억원보다 19.2% 감소했다. 품목별 감소 폭은 사과 17.4%(22억원), 배 20%(14억원), 감 26.4%(2억2천만원) 등이었다. 이번달 출하량 또한 사과는 7.8%, 배는 56.7% 각각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선 농가에선 이맘때면 전년 가을 수확한 사과가 90% 정도 출하됐다. 하지만 올해는 재고가 40∼50%까지 쌓여있는 것으로 과수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저장고에 보관 중인 과일은 출하가 늦어질수록 상품성이 떨어진다. 수분 증발로 과질이 안 좋아지고 중량도 줄어든다. 시간이 가면서 상태가 나빠져 판매가 불가능한 상품이 크게 늘어난다. 저온저장고가 없는 농가는 보관 기간이 짧아 재고 처리가 더 절박하다. 추위가 물러가고 날이 따뜻해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제값 받기를 포기하고 인근 시장이나 노점상에게 헐값에 넘길 수밖에 없다. 생산비도 건지기 힘든 상황이다.

과일 수요 감소는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심리 위축과 장기적인 경기 침체, 외국산 과일 수입 확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5만원 이상의 선물을 금지하고 있지만, 업무 연관성 규정 등을 의식해 아예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또 경기 불황 때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먹거리 가운데 선택 품목인 과일 소비를 줄이는 경우가 많다. 오렌지, 바나나 등 비교적 값싸고 당도 높은 외국산 과일이 국산 과일을 빠른 속도로 대체하고 있는 것도 이유다.

하지만 과수 농가를 보호할 대책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당장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과일 소비촉진을 위한 행사라도 대대적으로 펼쳐야 할 상황이다.

지금 농촌은 수입시장 확대로 농업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인데 AIㆍ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이 휩쓸고 간데다 쌀·과일값 폭락과 소비 부진으로 악재가 겹쳤다. 의욕 잃은 농민들은 ‘출구가 없다’거나 ‘희망이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 영농철이 다가오지만 악재뿐인 잿빛 들녘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농업ㆍ농촌ㆍ농민을 위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