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저출산, ‘문제’부터 바꿔라

류설아 문화부 차장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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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신조어 ‘취집’이 등장했다. 취업과 시집을 조합한 단어다. 여성이 취직 대신 시집을 선택하는 사회현상을 함축하고 있다. 국가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인 청년실업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단어였다. 대부분의 비판과 비난은 여성에게로 향했다. 조건만 따지며 남성에게 기대어 살고자 하는, 무능력에 속물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여성상위시대’를 맞아 주체적으로 살라고 강조했다. 여성은 죄인이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직업별 혼인건수’에 따르면 2015년 전체 혼인 중 무직 또는 학생인 상태에서 결혼하는 여성의 비중이 2005년에 비해 20%p 급감했다. 2005년에는 결혼하는 여성 중 54.0%가 무직 신분이었다. 2011년 무직 여성의 혼인 건수는 42.7%를 기록, 매년 줄고 있는 추세다. 취집에 대한 비난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2017년,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었다. 뒤집어보면 맞벌이가 필수인 시대에 여성도 직장이 있어야 결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아닌가.

 

▶여성의 고학력, 고스펙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인구포럼’에서 발표한 보고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에서 나온 주장이다. 혼인율 하락이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인 만큼, 혼인율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혼인율을 높이기 위해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배우자를 하향 선택하는 변화를 유도하고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는 정책 등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도 여성은 죄인이었다. 그 벌로 여성은 덜 공부하고 동반자 선택 기준을 바꾸라 했다.

 

▶연초 행정자치부는 전국 가임기 여성 현황과 그 수에 따라 전국 순위를 매긴 ‘출산 지도’를 인터넷에 공개했다가 황급히 내렸다. 이름도 망측한 출산 지도 역시 저출산의 원인을 여성에게 전가했다는 뭇매를 맞았다. 신조어, 통계, 정부 대책 등 모든 것에서 저출산 문제를 야기한 것은 여성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임을 드러낸다. 답은 문제에 따라 나온다. 이대로 계속 여성이 문제라면, 답은 결코 없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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