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역사인물] 김대건(1821∼1846)

전교활동 펼친 한국 최초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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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에서 자랐다. 1831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15세 때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의 지시로, 동북국경을 통하는 새로운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남만주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땅에 잠입했으나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그동안에도 꾸준히 신학을 공부하고, 1844년에 부제(副祭)가 됐다.

 

1845년 1월 10년 만에 귀국했다. 서울에 자리잡은 뒤 박해의 타격을 받은 천주교회를 재수습하고, 다시 상해로 건너가서 완당신학교 교회에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됐다.

 

서울에 돌아와 활발한 전교활동을 폈다. 서양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하다가 체포됐다. 새남터에서 처형됐다.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그를 성직자들의 대주보로 삼고 있다. 1925년 로마교황 비오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됐고,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됐다.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했고, 영국제의 세계지도를 번역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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