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어떤 정치인이 덜 해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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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 언론사에서 조사한 존경받는 직업 1위가 소방관이었다. 해마다 평균 5명 이상 순직하고, 100명 이상 부상을 입으며,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소방관들을 국민들은 이렇게 존경하는 것이다. 2위는 환경미화원, 3위 의사, 4위 교사…42위에 노조위원장, 그리고 44위에 국회의원.

 

아니 연봉이 1억4천만원(월급 1천150만원)이나 받고, 온갖 특혜는 다 누리는 국회의원이 소방관은 고사하고 운전사, 동사무소 직원, 환경미화원만큼도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뿐만 아니라 ‘앞으로 10년 후에 사라질 직업’에서도 은행 투자상담사, 스포츠 심판, 부동산 중개인 등이 나열되는데 국회의원은 끄떡없다. 인공지능, 로봇기술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제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같은 로봇이 국회의원을 대신할 수 없다니 정치혐오증에 걸린 사람들의 실망이 클 것 같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는 ‘정치혐오증’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많다. 물론 이 병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 탄핵정국을 겪으면서 더 넓게 전염된 것 같다.

‘그 X이 그X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렇게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혈압을 높이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그렇게 정치인들을 싸잡아 욕하고 비난해야만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 식견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정치에 대한 절망, 좌절은 신문이나 TV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말이 그 말이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것.

 

하긴 육군 참모총장과 국정원장을 지낸 남재준씨가 무소속으로 대통령 후보에 예비등록을 하면서도 우리 정치 현실에 그런 냉소를 보냈다. ‘주류, 비주류,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친문, 반문, 이제 정당이냐’는 것이다. 정치 현장에 초년병인 남재준씨가 정치를 비판한 데는 그 나름의 판단이 있을 것이지만, 정치 노년병들까지도 자신이 몸담은 정치 현실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가령 자유한국당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는 1997년 9월 14일 대통령 경선에 불복해 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3金 시대를 청산’하고 21세기 위대한 한국 건설을 이룩하겠다고 했다. ‘친일 청산’, 권위주의 청산, 군사정권 청산, ‘3金 청산’, 계속 이어지는 청산, 청산…. 그러나 우리 정치 무엇 하나 제대로 청산했는가.

 

대선후보 중 어떤 후보는 자신의 출마를 ‘국민의 부름에 호응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언제 어떤 국민이 그를 출마하라고 불렀는가? 그래서 국민들은 정치를 혐오하고 그들 말잔치에 냉소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정치를 혐오해서는 안된다. 믿을 수 없고, 교활하고, 부패와 패거리의 이기심, 어제의 말이 오늘 다르고…. 하지만 우리는 정치의 끈을 놓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될 경우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길리건(James Gilligan) 교수가 저술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 보다 해로운가’라는 책에 의하면 유권자들이 정치 혐오에 빠지지만 그러나 어떤 정당이 집권하느냐, 패배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생활 리듬마저 변화를 일으키고, 나아가 자살과 살인 등 범죄에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정치가 공기처럼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지배하고 정치를 떠날 수도 없다는 것.

 

그러니 길리건 교수의 책 제목 그대로 기왕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어떤 정치인이 다른 정치인보다 덜 해로운가?’를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정치인을 미워해도 정치혐오증이라는 바이러스에 걸려서는 건강한 민주정치를 기대할 수 없으며 역시 똑똑한 국민이 정치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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