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이강소의 ‘선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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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이강소 작가는 제9회 파리청년비엔날레에 참가했어요. 그가 국제적인 비엔날레의 참여 작가로 추천될 수 있었던 데에는 탁월한 ‘한국적 세계어’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평론가들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의 비엔날레 참가는 한국미술이,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지역 국가의 미학언어가 세계어와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어요. 그는 비엔날레에서 ‘무제-75031’이란 작품을 선보였죠.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일명 ‘닭의 퍼포먼스’로 알려진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당시 파리 미술계는 물론, 시민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파리 화단은 고색 찬란했습니다. 실험미술이 대중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 입장에서는 낯설었겠죠. 살아 있는 닭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동물학대를 한다느니, 뭐 이런 작품이 있느냐는 둥….”(이강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미술평론가들과 참여 작가들의 뜨거운 찬사 속에 그는 프랑스 국영 TV의 뉴스에 소개되기도 하는 등 문제적 작가로 주목받았어요. 전시장 내에 실제 닭의 발목을 줄로 묶어 설치한 뒤, 닭이 회분가루 묻은 발로 그려낸 ‘묶인 만큼의 바운더리’로 억압과 자유를 표현했던 것은 당시의 한국사회를 가장 명징하게 그려낸 수작이 아닐 수 없어요.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이 미학적 사건의 ‘명작’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예컨대 큐레이터 김승덕은 ‘닭의 퍼포먼스’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죠.

 

“이 작품은 프랑스 평론가 니꼴라 부리오의 ‘관계성의 미학’을 훨씬 앞서 예보하는 듯하다. 이강소의 ‘치킨 페인팅’은 일본 현대미술의 구타이류의 작품들이나 30여 년 전 유행했던 여타의 유행하던 회화들에 관한 풍자적인 논평이었다. 당시 젊은 작가들이 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세태에 관한 이강소의 멋지고 재미있는 논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관계성의 미학은 사실 1973년 명동화랑에서 개최한 그의 첫 개인전 ‘선술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선술집’은 미술사가나 평론가들에 의해 여러 이벤트들 중의 하나로 인식하지만(당시 한국미술계에는 ‘퍼포먼스’라는 말이 없었고 ‘이벤트’를 미학적 개념으로 사용했어요), 사실 ‘선술집’과 같은 기획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는 사건 중의 사건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재평가 받아야 할 전시나 작품이 있다면 반드시 이 전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놀라운 이 ‘개념적 이벤트’는 1992년 뉴욕의 한 화랑에서 태국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가 팟타이 음식 퍼포먼스로 보여준 ‘관계성의 미학’보다 20년이나 앞선 것이기 때문이에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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