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건의 발화지점은 바로 군수 승용차의 운전기사였다. 운전기사는 군수와 인척 관계였고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관내 여론과 산하 공무원들의 동향을 수시로 보고했다. 말하자면 비공식 정보 채널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자 눈치 빠른 업자들과 공무원들이 그 운전기사에게 줄을 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주차장 허가에까지 관여해 돈을 받았음이 수사 결과 밝혀졌다. 그뿐 아니라 공무원 인사에도 개입했는데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돌던 소문이 공공연히 퍼져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비선 실세가 형성하는 패턴이 군수에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 장관은 물론 청와대에까지 퍼져나간다는데 있다.
한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어느 위치에 올라오기 까지는 ‘집사’처럼 지근거리에서 봉사한 사람도 있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사람도 있기 마련. 특히 ‘의리’를 목숨처럼 생각하고, 인정이 많은 한국인들은 자기를 위해 희생하고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박근혜 전대통령과 최순실 사이도 그렇게 출발했으며, YS DJ 정부 때도 민주화 투쟁에서 고난을 겪은 동지들을 보살피는 것을 당연시했다.
이렇듯 개인적 인간관계로 짜여진 베일 속에 공권력이 가려지면 부패 바이러스는 기하급수로 늘어나, 부끄럽게도 우리나라가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6년 국가별 부패지수에서 52위를 기록하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아프리카의 가봉, 기니 같은 저개발국만도 못한 부패인식 지수 52위!
그런데 이 부끄러운 고질병을 우리가 분권형 개헌만 하면 고칠 수 있을까?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은 헌법을 개정하여 ‘내각책임제’로 정부형태를 확 바꾸었다. 내각제만 되면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됐던 것인데, 그 결과는 9개월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내각제에 의한 장면 정권하에서 한꺼번에 자유가 분출하여 혼란과 무질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41개이던 신문은 115개로, 기자는 16만명으로 늘어났으며 데모로 아침을 시작하여 데모로 해가 지는 나라가 되었는데 4ㆍ19후 11개월 동안 약 2천회의 데모가 있었으니 짐작할만하다. 심지어 국회 의사당에 시위대가 난입하는 사태까지 있었고, 학생들은 ‘남·북학생회담을 열자’며 어처구니없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여기에 집권 민주당은 신·구파의 분열로 극심한 파쟁에 휩싸여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동력을 잃고 방황했다. 이와 같은 혼란은 마침내 5ㆍ16 군사 쿠데타의 구실을 주었고, 정치체제는 다시 대통령 중심제의 제3공화국으로 나타났다.
양원제는 단원제로 복귀했으며, 대통령에 긴급명령권이 부여됐고, 이를 바탕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요즘 또다시 탄핵정국을 겪으면서 대통령 중심제의 헌법체제가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어냈고, ‘최순실 국정농단’과 같은 비극을 반복했기 때문에 ‘분권형 개헌’을 하자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분위기로는 개헌을 하면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처럼 당쟁과 파벌이 극심한 정치풍토에서 헌법 개정만으로 가능할까?
오히려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국가의 위기가 극도에 다다랐을 때도 나라는 뒷전이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했던 우리 정치 DNA는 역시 제도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개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공직자의 인간관계 투명성 회복 운동이다. 이를 위한 국민운동이 특히 종교계가 중심이 되어 전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활절, 석가탄신일을 보내는 봄에 선거까지 겹쳤으니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닐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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