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역사인물] 권율(1537~1599)

행주대첩 승리 이끈 조선의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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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명장. 1582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가 된 후 여러 관직을 경험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제수돼 바로 임지로 떠났다. 왜병에 의해 수도가 함락된 뒤 곽영의 휘하에서 중위장이 되어 서울의 수복을 위해 함께 북진했다. 남원에서 천여 명의 의군을 모집해 전주로 들어오려는 왜군을 맞아 황진과 함께 싸웠다.

 

도성 수복을 위해 수원 독성산성에 들어가 진지를 구축했다. 명나라 원군과 호응해 도성을 수복하기 위해 독성산성으로부터 서울 근교 서쪽 가까이로 옮기기로 하고 행주산성을 택했다. 맹렬한 공격을 받아 성이 함락될 위기에 직면했으나, 관군과 의승병이 사력을 다해 승리를 거뒀다. 이것이 행주대첩이다.

 

1599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7월에 죽었다.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영가부원군으로 추봉됐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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