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조선 말기 의병장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이를 계기로 의병 활동을 재기, 일부 해산당한 군인과 손을 잡았다. 뒤이어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은찬·이구재가 해산 군인 80명을 포함한 500명의 의병을 모집, 그를 찾아와 총대장이 될 것을 요청했다.
9월에는 서울주재 각국 영사관으로 몰래 사람을 보내 일본의 불의를 성토하고, 의병은 순수한 애국 단체이니 열강은 이를 국제법상의 전쟁 단체로 인정해 적극 도와줄 것을 바란다는 관동창의대장 이름의 격문을 전달했다.
13도 의병장들의 연합전략회의 결과 원수부13도총대장에 추대되어, 전병력을 24진으로 하는 13도의병연합부대를 편성했다. 의병부대는 서로 기일을 정하고 서울 동대문 밖에 모여서 대오를 정비한 뒤 일거에 서울을 공략할 작전계획을 세우고 진격을 개시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장례를 마쳤다. 여러 차례 의병들이 재기할 것을 권유했으나, 아버지의 3년상 뒤 다시 13도의 창의군을 일으켜 일본인을 소탕하겠다고 말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09년 6월 7일 일본 헌병에게 잡혀 경성감옥에서 죽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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