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사병으로 복무하던 필자의 눈에도 완장을 찬 군인들이 위성에서 온 것처럼 높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며칠 안돼 ‘혁명군’ 완장은 모두 회수되었다. 이렇듯 빨리 회수한 목적은 타 부대와의 위화감 때문.
사실 완장은 전쟁 때 부상병 수송과 치료를 위한 위생병의 적십자 완장, 지진 피해 현장의 구조대원 완장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부감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 치열했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면 누가 승자가 되든 그 주변에 완장 부대가 생겨날 것을 우려하는 소리가 많다. 물론 승리의 뒤에는 승리를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도 공신(功臣) 제도가 있어 개국을 하는데 공을 세운 신하들, 또는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운 신하들을 포상했다.
조선왕조를 일으킨 태조 이성계는 자신을 도와 위화도 회군을 감행하고 새 왕조의 개국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배극렴을 1등 공신으로, 52명을 선정해 토지와 노비 등을 하사했다. 이른바 ‘개국 공신’이었던 것.
이들 공신들에게는 생존시 봉록과 함께 지위를 높여주고 죽은 뒤에는 위호(位號)를 내리는데 그것이 자손대에까지 계승된다. 그래서 그 공신 서열이 불공정할 경우 오히려 큰 화를 불러 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1624년의 ‘이괄의 난’.
이괄은 인조 반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1등 공신이 되지 못하고 김사점, 김유 등에 밀려 2등으로 낼 앉은 것이 계기가 되어 난을 일으켰고, 인조 임금은 난을 피해 충남 공주에까지 피란을 와야 했었다.
이렇듯 ‘공신’에 대한 배려는 자칫 분란을 일으키기 일쑤인데, 5ㆍ16 쿠데타에서도 함께 ‘혁명군’ 완장을 차고 거사에 참여한 군인들끼리 포상의 자리에 따라 내분이 생기곤 했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서도 그런 우려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모둔 후보가 한결같이 ‘통합’을 강조한 만큼 ‘완장부대’니 ‘공신’이니 하는 말이 결코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국가적 통합을 깨뜨리는 훼방꾼이기 때문이다.
정말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은 너무나 엄중하다.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 위협에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 등 안보 상황이 국민적 통합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우리가 죽고 사는 절박한 생존 문제이기 더욱 그렇다.
출산 절벽, 취업 절벽, 심각한 소득격차, 사상 최악의 가계 부채, 거기에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이것이야 말로 초당적, 초계파적 역량을 총집결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다.
미국의 동전 1센트 짜리에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링컨 초상이 있고, 그 밑면에 ‘E Pluribus Unum’이라는 라틴어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여럿이 모여 하나가 된다”는 뜻.
우리에게도 깊은 메시지가 될 것 같다. 완장도 없고, 공신도 없는-여럿이 모여 하나가 되는 대한민국.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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