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역사인물] 최영(1316년∼1388년)

왜적 물리치고, 고려왕실 보호한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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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명장. 왜구를 토벌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워 우달치가 됐다. 

당시 원나라에서 고려에 원병을 청하자 40여 명의 장수와 함께 군사 2천명을 거느리고 원나라에 갔다. 이듬해부터 고려가 배원정책(排元政策)을 쓰자 원나라에 속했던 압록강 서쪽의 8참을 공격했다. 

여러 차례 홍건적과 왜군을 무찔렀다. 노구를 이끌고 출정해 공을 세우기도 했다. 1388년 문하시중이 되어 왕의 밀령(密令)으로 부패와 횡포가 심하던 일당을 숙청했다. 그해 딸이 우왕의 비가 되었다. 이때 명나라가 철령위(鐵嶺衛)의 설치를 통고하고 철령 이북과 이서·이동을 요동에 예속시키려 했다.

이성계로 하여금 군사 3만 8천800여 명으로 요동을 정벌하게 했으나, 이성계가 조민수를 설득하여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함으로써 요동정벌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성계의 막강한 원정군을 막지 못하여 결국 도성을 점령당했다. 이성계에게 잡혀 고향인 경기도 고양으로 유배, 참수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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