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당한 지시, 툭하면 해고… 道경과원 비서 / 비정규직 폐단의 전형… 철저히 조사해야

문재인 정부의 최대 화두로 비정규직 폐지가 등장했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드는 이 일을 시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부당한 대우 안 받을 권리, 해고의 불안에서 벗어날 권리를 위해서다.

그 폐단의 일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경기도 산하기관에서 불거졌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의 비서직 인사 난맥이다. 기관 통합으로 신설된 이곳에 신임 이사장이 취임한 것은 지난 2월 17일이다. 진흥원은 한 달여만인 3월 22일 이사장 비서를 해고했다. 4월 6일 채용된 두 번째 비서는 단 하루만 일하고 사직했다. 4월 10일 근무를 시작한 세 번째 비서도 3주가 지난 4월 28일 해고했다. 이사장 취임 두 달여 만에 3명의 비서가 해고된 것이다.

진흥원 측은 해명했다. ‘일주일 내에 같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한다’ ‘(이사장이) 영어 실력이 매우 뛰어난 비서를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무슨 얘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통상 사원 채용에는 서류 심사, 면접 등의 검증 절차가 있다. 경우에 따라 조직이 원하는 분야의 자격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절차를 거쳐 ‘같이 일 할 수 있다’고 판단된 직원, 또는 ‘영어 실력이 있다’고 검증된 직원을 뽑는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 채용이다.

‘일주일간 일해 보고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근무 중 영어 실력을 검증한다’면 채용 심사는 뭣 하러 하나. 비정규직에 대한 전형적인 갑질이다. ‘아무 때나 잘라도 된다’는 인식을 뿌리 깊게 깔고 있는 사고다. 만일, 해고된 비서들이 정규직이었다면 절대 이런 일이 빚어질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비서들의 컴퓨터에서 이사장의 비위가 뭉텅이로 쏟아져 나왔다는 점이다. ‘이사장 업무사항 고충’이라는 제목의 문서에는 이사장으로부터 당했을 비정규직 비서들의 고충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상식이 없다’ ‘개념이 없다’는 등의 막말부터, TV를 켜고 끄는 일과 채널을 돌리는 일까지 시켰다고 돼 있다. 주말에 운전기사를 불러내 사우나를 갔다거나, 해외 출장에서 개인적 용무를 위해 조직과 예산을 썼다는 부분도 있다.

비난 대상을 넘어 조사 대상으로 보인다. 해고가 정당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연유는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서에 적힌 23가지 고충 가운데 실정법을 위반했거나 예산 규정을 위반한 것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폐지의 가장 극명한 부작용들이 이번 논란에 집약돼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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