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사냥꾼’ 먹잇감 된 중소기업… 포천·양주 돌며 수십억 정보 훔치다 적발

포천·양주 돌며 수십억 정보 훔치다 적발
현행법상 처벌수위 약해 불구속수사 그쳐
도내 中企들 피해 입어도 뾰족한 대책없어

경기지역 중소기업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독자 개발한 기술만 골라 빼돌리는 이른바 ‘기술 사냥꾼’에게 무방비로 노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도 현행법상 기술 사냥꾼에 대한 처벌이 약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17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등에 따르면 도면설계사 A씨(49)는 2012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포천·양주 일대 회사 5곳을 틈나는 대로 옮겨 다녔다. A씨는 거치는 회사마다 닥치는 대로 기업의 중요 정보 6천642건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했다. 해당 기술들은 연구비만 총 50억여 원에 이르는 데다 각 기업이 해외로 수출할 만큼 해당 분야에선 독보적이다.

 

더욱이 A씨는 올해 초 B사 퇴사 직후 유출한 설계도면을 갖고 개인 법인을 세운 뒤 B사 거래처를 상대로 낮은 가격으로 입찰까지 시도했다. 경찰에 적발되면서 범행이 중단됐지만, 문제는 수십억 원의 기술을 훔친 A씨가 강한 처벌은커녕 불구속돼 또다시 다른 중소기업을 돌면서 같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이유는 A씨가 저지른 범행이 사기나 절도 등의 성격이 강한데 피해 금액이 수십억 원일 경우 보통 구속수사로 진행되는 반면, 부정경쟁방지법은 처벌수위가 이들 혐의(징역 10년 이하)보다 다소 낮은 징역 5년 이하로 해석하는 등 범행에 다소 관대하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삼성이나 LG 같은 다국적 기업에서 발생한 수백억대 기술유출쯤은 돼야 구속영장 발부가 가능하다”며 “법이 중소기업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중소기업들은 A씨와 같은 기술 사냥꾼의 표적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기술 유출은 범행 성립기준이 모호, 법을 해석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으며 강한 처벌로 이어진 사례가 거의 없다”며 “중소기업들은 피해를 입어도 이를 해결할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술개발만큼 보안 역시 중요하다며 중소기업에 맞는 개선책을 찾는 게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기술이 유출되면 일자리 200개를 잃는 손실과 맞먹을 만큼 보안이 중요한데도 우리나라는 보안을 장려하는 정책이 없다”며 “정부가 보안에 대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시급히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부=조철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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