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리는 어느 사이에 ‘비정규직’이니 ‘기간제 교사’니 하는 말만 들어도 황사와 미세먼지에 찌든 하늘을 보는 것처럼 시야가 흐려진다.
경기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 산하 최대 규모 공공기관 이사장이 취임 두달만에 여비서 3명을 교체했는데 그 중에는 단 하루만에 자리를 떠나는 등 보기드문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비서들이 사용하는 컴퓨터에서 발견된 문서의 내용이다. ‘이사장 업무사항 고충’이라는 제하의 이 문서에는 주말인데도 운전기사 불러서 사우나를 하고, 사우나 하는 동안 운전기사는 대기하는가 하면 책상 위에 리모컨이 있음에도 비서에게 TV 전원 켜달라, 채널 변경해라, 영문 이메일 워드 작업 요청 후 마음에 안들면 짜증과 고함을 지르고 심지어 원고를 던지거나 찢는다는 것.
우리는 이와 같은 비정규직이 겪고 있는 불평등과 갑질 논란에 대해 익히 보고 들어왔다. 정말 비정규직은 피곤하다.
어떤 노인이 밤늦게 지하철을 탔는데 한 젊은이가 못본 척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젊은이를 깨워 자리를 양보하라고 했고, 그러다보니 가벼운 언쟁이 벌어졌다. 알고 보니 그는 새벽에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 그래서 피곤에 지쳐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지금도 그 젊은이의 고단한 잠을 깨운 것을 매우 미안해하고, 후회하고 있다는 글을 한 신문에 썼다.
기간제 교사가 겪는 불평등의 고충도 심각하다. 단적인 예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2명의 기간제 교사 순직 처리다. 최근에야 순직으로 인정돼 절차를 밟는데 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학생들의 담임선생님이었고,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4층 선실로 내려갔다가 희생을 당했는데도 신분이 정식 교사가 아닌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처리가 되지 못했던 것.
이들이 신분상 겪는 비애는 너무 크다. 심지어 ‘스승의 날’ 행사에서조차 기간제 교사의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 주어야 하느냐 마느냐로 시비가 된 학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어떤 기간제 교사는 아예 휴가를 내고 그 자존심 상하는 현장을 벗어나기도 했다니 참으로 민망스런 우리 교육 현장이다.
이처럼 비정규직 문제, 기간제 교사 문제는 지금 뜨거운 핫이슈가 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몇일도 안돼 인천공항을 방문, 임기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했고 이에 발맞춰 인천공항측이 비정규직 1만명을 모두 정규직화 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일련의 움직임이 그런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그러나 332개 공공기관 중 인천공항처럼 흑자경영을 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공공기관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까지 일시에 ‘제로’시대를 열 수는 없다는데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또 전체 교원의 9.4%에 이르는 4만명이 넘는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은 어떻게 할 것인가?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이 두 물줄기를 바로잡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책임자들의 ‘열린 마음’, ‘인간존중’의 정신이 더 시급하다. TV 채널 바꾸는 것까지 시키는 ‘갑질 문화’부터 바뀌어야 한다. 비정규직은 ‘리모컨’이 아니라는 의식개혁이 더 먼저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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