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王과 바둑, 알파고와 바둑

▲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로 지능적이고 전략적인 ‘스파이’하면 고구려 스님 도림을 꼽는다. 그는 장수왕 때 고구려를 치려고 열심히 준비중인 백제를 무너뜨리라는 특명을 받고 지금 서울 송파구 풍남토성에 있던 백제 수도로 밀파된다.

 

도림 스님은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무척 좋아하는 것에 착안, 바둑을 통해 궁궐에 접근하는데 성공했고, 그의 뛰어난 바둑 실력은 곧 개로왕에게 알려져 자주 대국을 벌였다. 대국의 횟수가 늘어나자 왕은 도림 스님이 고구려에서 파견된 스파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를 왕궁에 모시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사는 돌보지 않고 밤낮 도림과 바둑을 두며 세월을 보냈다. 바로 그가 스파이로 파견된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더 나아가 도림은 개로왕으로 하여금 고구려 침공을 포기하게 만들고, 나아가 호화 궁궐을 신축하는 등 필요없는 토목공사에 국력을 쏟게 하였다. 도림은 백제를 이렇게 어지럽혀 놓고 홀연히 고구려로 도망가 장수왕에게 모든 것을 보고했다.

 

장수왕은 ‘바로 지금이다’라고 판단, 남침을 감행하여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모두 빼앗았고 백제 개로왕은 지금의 서울시와 구리시 사이에서 전사했다. 그리고 그 아들 문주가 남하하여 공주(웅진성)에 새 도읍을 정하였으니 바둑에 빠진 부왕 때문에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것을 얼마나 원망했겠는가.

 

이렇듯 백제는 임금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바둑을 무척 좋아했다. 얼마나 백제가 바둑을 좋아했는지 의자왕이 왜(倭) 조정의 실력자 후자와라 노가마타리에게 바둑판과 바둑알을 보냈다는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때 백제가 보낸 바둑판의 원목이 스리랑카 산이고, 바둑알도 절반이 상아인 것을 두고 이건 백제의 것이 아니라 중국 것이라는 이견을 내놓은 학자도 있다. 그러나 한국전통문화대학의 이도학 교수는 이미 이 무렵 백제는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해상교류가 활발한 나라였고, 그래서 스리랑카나 태국 등에서 바둑판과 바둑돌의 원자재를 충분히 조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 일본 바둑의 ‘중국설’을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교수는 일본에 전해준 바둑판의 17개 화점 숫자는 중국 바둑판과는 전혀 다르다며 의자왕의 바둑판은 백제 제작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또 일본에 전해진 바둑판 모서리에 그려진 6마리의 낙타를 두고, 백제에 어떻게 낙타가 있느냐, 이건 중국 것이라고 하는데 이도학교수는 “일본 서기에 백제로부터 낙타를 선물로 받았다는 기록이 두 번이나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며 반박한다. 그러니까 무의식중에 우리들 문화는 얕잡아 보고, 중국 위주의 ‘문화적 사대사상’이 은연중에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것이다.

 

요즘 중국에서 개최됐던 중국 제1의 바둑왕 커제와 알파고의 치열한 대국이 세계적으로, 특히 한·중·일에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세계 챔피언 5명이 머리를 싸매도 알파고는 꿈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이세돌과의 대결 후에도 알파고는 꾸준히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인공지능의 진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국가대표팀의 한 감독은 알파고의 착점을 보면서 “바둑을 다시 배워야할 것 같다”고 고백했다는 보도를 보고 섬뜩함마저 느꼈다.

 

중국의 커제 역시 ‘알파고에게 약점이 없었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바둑을 통해 인공지능이 던지는 무서운 메시지일 것이다. 약점없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앞으로의 시대는 행복일까 불행일까. 우리도 제4차 산업혁명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