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매년 화두다. 청년들은 ‘스펙’ 쌓기에 급급하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려 애를 쓰고 있지만 이는 중장년도 마찬가지다. 은퇴 후에도 생계를 위해 또다시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어 가는 중장년, 노인층에게도 일자리는 필요하다.
이에 기자는 ‘2차취업’으로 전전긍긍하는 중장년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1일 ‘일자리 알선 상담가’에 나섰다. 청년실업률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가운데 그 이면에 가려져 있는 중장년들의 취업난을 재조명해봤다.
■ 일자리 상담 핵심은 ‘취업자의 심리 파악’
지난 1일 오전 10시께 찾아간 시흥시 여성비전센터. 여기서는 경기도내 40대 조기퇴직자, 50대 베이비부머 세대의 재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취업특강’과 함께 ‘일자리 알선 상담’이 진행된다.
본격적인 일자리 알선 상담에 앞서 대면 상담할 때 주의할점, 꼭 질의해야할 것 등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대면으로 구직자를 상담할 때는 구직자의 취업 욕구, 구직 목표 등을 구체적으로 또 정확하게 파악해야한다고 한다.
또 중장년 취업 상담의 경우 취업에 대한 하소연, 고충 등을 토로할 때가 많다고 해, 이때 취업자의 심리 파악 또한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다. 이 같은 내용을 꼼꼼히 노트에 받아 적었다. 교육을 어느정도 끝마치니 약간의 부담감과 함께 사명감도 들었다. 어쩌면 한 가정을 책임져야할 중장년들의 일자리이기 때문에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1시간가량의 교육을 끝마친 후 점심을 먹고 다시 도착한 오후 12시께 센터 로비는 어느새 수백명의 구직자들로 바글바글했다. 취업상담과 취업특강을 위해 모인 이들은 언뜻 보기에도 200명은 돼 보였다. 그야말로 취업을 위해 북새통을 이뤘다. 일단 ‘스태프(staff)’라고 적힌 네임텍을 목에 걸고 일자리 상담을 하기 전 이들의 구직활동을 돕는 안내를 시작했다. 상담을 받기 전 이력서를 작성하는 시간이었다.
기자가 일자리 알선 상담을 위해 모인 중장년들을 안내하고 있다.
■ 중장년층 취업의지,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
구직자들은 이력서 작성대로 하나 둘 몰려들었다. 이력서를 막힘없이 술술 써내려가는 이들도 있는 반면 이력서가 생소한 듯 하나하나 물어보며 작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중장년들의 이력서 작성을 돕다 문득 기자가 취업할 당시가 떠올랐다.
청년 취업자에 있었던 당시의 내가 썼던 이력서와 지금의 중장년 이력서가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 ‘언론고시’라고 부를 정도로 치열했던 언론사 입사 전쟁이 떠오를 만큼 이들의 취업 현실도 어렴풋이 직감할 수 있었다. 나이만 다를 뿐 결국 취업난 속에서 취직을 하려는 이들의 열정과 의지는 20대 초반이었던 당시의 나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력서 작성을 도와주면서 놀랐던 점은 중장년들도 청년들과 다를 것 없이 오로지 취업을 위해 자격증을 따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자가 이력서 작성을 도운 10명 중 7명은 적어도 2개 이상의 자격증은 보유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기자의 직업상담을 도와준 최명희 전문 직업상담사의 말에 따르면 요즘 중장년, 노인들도 취업하고자 하는 욕구가 넘쳐 자격증 교육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취득한 자격증과 현실 노동환경과 많이 달라 괴리감(?)을 느낀다는 것도 청년과 비슷했다. 이들 중장년이 보유한 자격증은 요양보호사 자격증부터 소방 관련 자격증 등 다양했다.
이들은 경력도 화려했다. 전문직은 아니어도 요양, 경비, 제조업 등 한길 인생을 걸어와 나름의 전문성을 확보했기 때문. 그러나 사회초년생에게도 ‘경력’을 요구하는 요즘 취업시대에 이들은 전문성이 확보된 경력을 가졌음에도 취업특강, 일자리알선 등을 받으러 나온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도 했다. 이런 경력을 가지고도 스스로 재취업을 하지 못한다는 취업의 현실이 더욱 혹독하게만 느껴졌다.
중장년층 취업 특강 안내 책자를 들고 소개하고 있다.
■ 취업 알선 상담으로 근심 덜다
오후 12시, 본격적인 취업 상담이 시작됐다. 이들의 미래를 결정할 직업상담, 허점이 생기면 안되기에 전문직업상담사가 함께 배석해 기자의 서투른 상담을 도와주며 진행했다. 약간의 부담감과 사명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첫 번째 구직자를 만났다.
식당조리원 근무경력만 10년이라고 하는 A씨(54·여)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묻어 있었다. A씨는 “오랫동안 식당조리원 일을 했지만 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두게 됐다”며 “건강이 좋지 않지만 단시간이라도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고민이다”고 한숨을 내쉬며 털어놨다.
본인의 고민을 서스럼 없이 털어놓아 처음엔 어떤 답을 내놓아야할지 몰라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 문득 이전에 취재하며 알아뒀던 ‘중장년 정부지원금’이 생각이나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단시간 일을 하는 것도 금전적인 면에선 크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A씨는 썩 괜찮은 제안인 듯 “중장년 정부지원금 내역 등을 알고 싶다”고 물었다. 이에 직업상담사와 기자는 알고 있던 정부지원금 정보를 제공해 A씨의 근심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게 됐다.
A씨가 정부지원금 내역을 들고 일어서자마자 곧바로 다음 구직자가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B씨(47)는 기계기술직으로 근무하다 퇴사했다고 한다. B씨는 상담하는 동안 취업에 대한 의지를 끊임없이 보였다.
그는 “지금 계속 구직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나이 때문에 힘든 것 같다”고 토로하면서도 “아직 신체도 건강하고 일을 하고 싶기에 여기저기 구직활동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자신이 작성한 구직신청서를 내밀었다. 남들보다 꼼꼼히 작성한 B씨의 구직신청서에는 용접일, 기계기술 등 자세한 희망직종, 근로조건 등이 명시 돼 있었다.
이에 B씨가 원하는 이상적인 근무환경은 아니지만 이에 가까운 구인기업 2~3개를 소개해줬다. B씨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여기선 계속 근무할 수 있는거냐” 등의 질문을 하고선 “여전히 내가 일할 곳이 있다는 게 고맙고 다행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활기띈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어 구직자 C씨(58·여)도 “생산직 근무 후 정년퇴직해 일자리를 다시 알아보고 있다”고 운을 뗀 뒤 “나이 때문에 생산직은 힘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털어놨다. C씨의 얼굴에는 나이의 한계에 부딪혀 이를 벌써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C씨는 “나이에 맞는 일이라면 취업을 하겠지만 막상 생산직 외에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일자리가 생겨도 사실 주저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기자가 중장년 구직자를 대상으로 일자리 알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기자는 “나이 제한 없는 단순노동직도 괜찮다면 정보를 취합한 뒤 소개해주겠다”고 답했지만 C씨는 여전히 다른 직종에 발을 담그는 것이 주저되는 듯 “현재 실업급여를 받고 있고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생각을 해보고 상담이 필요하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옆에서 지켜보던 최 직업상담사는 “상담을 하다보면 직업을 찾기 보다는 현실에 부딪힌 한계 탓에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고 새로운 직장을 들어간다는 부담감에 주저하는 경우도 더러있다”며 “이럴 경우엔 답을 내놓기 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도 인간적인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날 기자는 ‘초보 상담사’에도 못 미쳤지만 중장년 구직자의 애환, 고충 등을 들어주고 해답은 못 줘도 2차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데에 의미를 두고 상담했다. 실제로 근심어린 얼굴로 찾아와상담을 받은 뒤 가뿐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구직자를 보면 마치 내 근심도 해결된 듯 가뿐했다.
직업 알선 상담을 통해 중장년의 현실을 보니 청년취업난 뿐 아니라 이들 중장년 또한 취업난이 심각했다. 이면에 가려진 중장년, 노년을 위한 현실적 일자리 대책도 절실했다. 여전히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국가와 경기도 정책 탓에 수많은 중장년층은 오늘도 일자리 알선 상담을 위해 먼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청년 취업난과 더불어 중장년들의 서글픈 ‘2차 취업’도 함께 재조명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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