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政治도 농사도 물갈이가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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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논에 물이 가득한 것을 보면 흐뭇해 한다. 벼농사는 물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논에 물을 가득 담는 것은 잔인(?)한 면도 없지 않다. 논바닥에 잡초가 숨을 못쉬게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고 그래서 잡초는 한동안 압사를 당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물을 빼게 되면 논의 흙에 공기가 스며들어 산소가 침투되는 효과를 보게 된다.

 

이때는 앞서 물을 가득 담았던 것과는 달리 바닥에 실금이 생길 정도로 거의 말라 버리게 내버려 두는데 이쯤에서 벼포기가 17개에서 25개 이상 벌어진다. 그러면 벼의 생육이 억제되고 그대신 여러 영양분이 벼이삭으로 오른다.

 

잠시 후 다시 논에 신선한 물을 가득 채워 벼를 튼튼하게 만드는데 그래야 웬만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벼가 된다. 그리고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맛있는 알곡을 수확할 가을을 기다린다. 이것이 물갈이다. 이 물갈이가 제대로 잘 이뤄지고 비와 바람, 태양과 조화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풍작과 흉작이 판가름 난다. 그리고 물갈이가 실패했을 때, 그것을 ‘물갈이 망조(亡兆)’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어 물갈이를 하는 것도 논농사의 그것과 같다. 이런 뜻에서 역대 정권중 YS(김영삼 전대통령)시절만큼 속시원한 물갈이는 없었다. ‘개혁’이라는 이름의 물갈이에서 YS는 군을 주름잡던 ‘하나회’를 해체하고, 하루아침에 별 50여개가 떨어져 나갔으며 대민업무를 담당하던, 그리하여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부서 70%를 교체시켰다.

 

전격적으로 단행한 금융실명제는 음산하게 뻗쳐있던 지하경제, 특히 음성적 정치자금을 차단하는 길을 열었다. 가히 혁명적이었다. 그 과정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까지 법정에 세웠으니 ‘혁명적’이라는 소리가 나올만 했다. 그러나 YS의 임기가 본격화되면서 인기없는 정부가 되었고 끝내 국가를 IMF의 터널 속에 던진채 막을 내린 것은 왜일까? 논에 물을 빼서 바닥의 흙 속에 신선한 산소가 배어들게 하고 벼포기를 튼튼히, 그리고 포기의 숫자가 불어나게 하는 물갈이의 후속조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논에 물을 댈 수는 있다. 그러나 때를 맞춰 물을 빼고, 다시 물을 채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말하자면 그 물갈이가 국민들 가슴 속에 스며들어야 하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특히 낙마하긴 했지만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 등에 국민들은 ‘물갈이’를 통해 신선함을 느끼고 있을까? 물갈이가 아니라 같은 이념, 같은 진영으로 채워진 무대의 배우 교체 정도로만 느낄까?

 

우리가 솔직히 이에 대한 대답을 망설일 때 프랑스에서 날라온 총선 소식은 명쾌한 답변을 제시했다. 올해 40세의 젊은 마크롱 대통령이 만든 ‘레퓌 블리크 앙 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의 압승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원내의석 0.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566석 중 70%에 가까운 400석 또는 그 이상도 할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승리가 가능했는가?

 

그것은 마크롱 대통령이 보인 물갈이 솜씨다. 이념이나 진영논리로 장관을 임명하지 않고,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 통합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에 국민적 감동을 얻은 것이다. 이 신선한 물갈이에 프랑스 정치를 양분해 온 사회당과 공화당은 무너질 수 밖에….

우리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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