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중학생 때 입대해 선무공작대 활동
종전 후 재입대 등 호국 정신 남달랐지만 뇌졸중 장애 판정받는데 10년 가까이 걸려
“국가 위해 청춘 바친 희생, 존중받아야”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추계리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로 총 세대수가 35호에 불과했던 작은 촌락이었다. 하지만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 때 무려 23명의 장정이 국군으로 차출된 명실상부한 ‘호국 영웅들의 마을’이다.
17살의 앳된 중학생이었던 이대희옹(82) 또한 추계리 출신의 학도병 참전용사다. 이옹은 “옛말처럼 어느 집에 젓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꿰고 있을 정도로 아기자기한 동네였다”며 “그렇게 가깝던 동네 이웃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내놓고 나라를 지켰는데, 이 사실이 잊히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옹은 1950년 11월28일 국방부 정훈국 학도의용대 제1기생 훈련을 수료하고 선무공작 대원으로 활동했다. 1951년 1ㆍ4 후퇴를 겪고, 학도의용대 서울ㆍ경기지구본부 용인지대 내사 파견대에 배속돼 용인-원주 간 군사도로 및 교량 파손 방비를 위한 경계 경비 작전을 수행했다. 또 북한군 패잔병 퇴로를 막고, 인민군 소탕 작전에 수차례 투입돼 빨치산 및 인공치하 부역자를 색출하는 등 한국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종전 후에는 재차 공군에 지원 입대해 4년 만기 제대할 정도로 국가 수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이옹이지만, 정작 나라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1년 지방공무원으로 입문, 1994년에 정년 퇴임하고서 1998년 5월 갑작스럽게 뇌졸중을 앓게 됐기 때문이다. 이옹은 “10년 가까이 병원을 오간 끝에 장애 판정을 받았다”며 “참전 신고를 해야 된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고 가까스로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처럼 참전 신고를 뒤늦게 하거나 절차를 몰라 손 놓고 있는 전우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면서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친 희생정신은 존중받아 마땅하기에 직접 언론 제보를 하고 신문고에 올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우들을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백발노인의 모습이었지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이옹의 목소리에는 참전용사로서 당당함이 묻어났다. 2명의 아들과 사위, 3명의 손자까지 모두 현역 병장 만기 제대를 해 정부로부터 ‘병역 명문가’로 인정받는 등 주변의 귀감이 될 만한 자격이 있었다.
이옹은 “같은 마을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웃 중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이 전부”라며 “나라도 이런 희생정신을 알리면 추계리의 호국 정신이 영원히 기억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유병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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