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다시, 보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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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첫날인 지난 5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걸어 나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문 대통령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미디어에서 ‘이런 대통령은 처음’이라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환호를 쏟아 내는 동안 나는 24년 전의 대통령 취임식을 떠올리고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청와대로 들어가던 날, 광화문 한복판에 차를 세우고 수만 명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당시 비서관으로 대통령을 수행했던 나의 기억 속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몰려드는 시민들을 보고 당황한 경호원들을 물리치고 시민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네는 대통령. 김 전 대통령은 ‘비정상’을 정상화한 대통령이었다. 군사 정권을 종식시키고, 독재와 불통의 정권을 끝냈다. 시민에게 봉사하는 대통령, 시민과 함께하는 대통령,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대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 줬던 정치인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해 투명한 시장 경제의 원칙을 세우고, 지방자치단체장 직접 선거 제도를 도입해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인 지방 분권의 시대를 열었으며, 군부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해 공화주의를 실현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공화주의라는 보수의 원칙과 가치를 바로 세웠다. 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출발점이자 근간이 바로 김영삼 정부에서 만들어졌다.

 

이때만 해도 전체 유권자의 30퍼센트가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는 말이 있었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릴 정도로 탄탄한 지지 기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무너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견고하게 보수를 지탱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 보수는 궤멸 상태다. 정권은 빼앗겼고 보수 정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있으며, 다음 지방 선거는 물론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조차 모두 진보진영이 장악하고 있다.

 

보수 정치가 시대의 변화에, 국민의 요구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 보수는 국가의 양대 과제였던 안보와 경제 성장을 이끌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1990년대에는 민주화의 한 축으로서 국가의 체제 변화를 이뤄 냈다. 이제는 공동체의 행복과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 그러나 보수는 소통과 공감, 공존이 아닌 불통과 독선, 편 가르기 정치로 국민을 실망시켰다. 그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맞물리면서 보수의 궤멸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 정치는 유효 기간이 지나 버린 폐기 대상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불통과 오만, 독선으로 일관한 수구 보수 세력이 문제이지, 보수 이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다원성, 합의의 원칙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진보 이념만으로는 또 다른 일방통행, 불통 정권이 나올 뿐이다. 서로 견제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을 위해서는 보수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도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던 썩은 보수 세력으로는 의미가 없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개혁의 속도에 있다. 개혁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점진적인 변화를 통한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보수이지, 변화를 외면하고 개혁하지 않으며 고여 있는 썩은 물이 되겠다는 것이 보수는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북핵의 위협을 과장하거나 이용하지 않는 진짜 안보, 양극화를 해소해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따뜻한 경제, 부패 기득권 세력과 차별화되는 깨끗하고 공정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

 

보수가 변화하고 젊고 합리적인 세력이 보수의 주류가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보수와 진보가 상식적인 논쟁을 하고 합의를 도출해 내는 협치의 새 정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인물 중심의 패거리 정치가 아닌 철학과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새 정치가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정병국 바른정당 국회의원(여주·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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