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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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서울 숭의초등학교에서 같은 반 아이들 4명이 한 친구를 담요 아래 밀어 넣어 야구방망이, 나무막대 등으로 집단 구타하고 물비누를 음료수로 속여 마시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연예인 아들, 대기업 총수 손자 등 4명의 아이들에게 맞았다 주장하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아이들은 “담요 아래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 “그냥 장난이었다”고 주장했다. 숭의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의도성과 고의성을 인정할 수 없어 조치할 수 없다”며 징계 대신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뜻의 ‘권고’만 했다. 한마디로 ‘장난’이었다는 얘기다.

피해자 유모 군은 충격으로 근육 세포가 손상되는 횡문근 융해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고 한동안 등교하지 못했다. 피해 학생 상태는 심각한데,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부터가 ‘폭력’일까. 2012년 학교폭력으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 권모 군을 폭행한 가해자들도 조사에서 “장난이었다”, “친해서 그랬다”고 했다.

2014년 교육부가 발간한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 개정판’에선 ‘사소한 괴롭힘’이나 학생들이 ‘장난’이라고 여기는 꼬집기, 때리기, 힘껏 밀치기 등도 학교폭력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숭의초 학폭위가 목격 학생의 증언, 피해 학생의 증언이 모두 ‘학교폭력’ 조항과 일치하는데도 ‘장난’이라는 가해자의 말만 받아들인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학폭위를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그동안 학교 폭력 사건을 자체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학폭위가 학부모들간 갈등을 부추긴 사례가 많다. 학폭위 제도는 미성년자의 학교 폭력이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것을 줄이고 학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2012년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폭위 처분을 신뢰하지 못해 학부모들이 경찰서로 가거나 재심을 청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학폭위 의결에 불복해 피해·가해 학생이 교육청 등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는 2015년 979건에서 작년 1천299건으로 급증했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학폭위 위원은 50% 이상을 학부모로 구성하게 돼있으며 교원 외에 법조인, 경찰, 의료인 등 전문위원을 참여시키도록 했으나 비율이 전체 위원의 15.5%에 불과하다. 선진국에선 학교 폭력에 학교가 주도적으로 나서되 경찰 등 사법기관이 긴밀히 관여해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우리도 전문위원 비율을 높이는 등 학폭위 제도에 대한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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