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론조사는 자사·특목고 존폐 기준이 아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자사고·외고 폐지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가 52.5%,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가 27.2%, ‘잘 모르겠다’가 20.3%였다. 응답자의 절반이 폐지에 찬성했고, 유지하자는 답변보다도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정책 결정에 있어 국민의 뜻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그 국민 뜻을 계량화하는 것이 여론조사다. 통계대로라면 자사·특목고 폐지 정책은 당장 밀어붙여도 무방해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를 그렇게 추진해도 좋을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이를테면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여론을 보자.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항상 많다. 여론 대로라면 국회는 없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삼권 분립의 한 축을 맡고 있다. 법조계에 대한 여론도 부정적이다. 정치 수사ㆍ재판 논란이 늘 있어 왔다. 여론대로라면 법조계도 없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법치의 수호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사·특목고 정책과 여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학생ㆍ학부모의 절대다수는 비(非)자사·특목고다. 일류대 독식과 지도층 독식에 대한 사회 전반의 거부감도 크다. 응답자의 많고 적음을 단위로 측정하는 여론조사이고 보면, 이 문제는 출발부터 한쪽으로 기운 주제(主題)다. ‘폐지 여론이 높다’며 호들갑 떨 일도 아니고, 이 수치를 흔들며 폐지를 주장할 일도 아니다. 그럴 통계와 주장들이 쏟아질 것 같으니 짚고 가려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인내심 있는 토론이다. 특목고 교장들은 연일 폐지 반대 부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사교육의 주범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학생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편에서는 연일 반대 논리를 펴고 있다. 사교육 과열의 주범이라고 주장하고, 공교육을 파괴시켜왔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쟁을 한 데 모아야 한다. 그리고 정면으로 논쟁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지켜본 국민이 장ㆍ단점을 비교하고 결론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앞선 조사에서 주목할 수치가 있다. 확연히 갈라지는 이념별, 세대별 차이다. 자사·특목고 폐지를 찬성하는 계층은 진보, 젊은 층이다.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킨 핵심 지지층이다. 어느 순간 대통령이 통치권 차원에서 밀어붙일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만일 그렇다면 더욱 필요해지는 것이 ‘결정을 위한 공론화’다. ‘점령군의 교육 독재’가 아닌 ‘국민의 참교육 부활’이라는 공감을 얻어놓는 작업이다. 귀찮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필요한 절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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