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수교 27년이다. 1990년 수교를 맺을 때 내세운 북방외교가 대(對)공산권 외교에 한정됐다면 국민의정부-참여정부에서는 경협과 한반도평화를 목적으로 한 북방경제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정부는 헛구호로 10년을 낭비했다. 지난 5월 러시아특사로 갔을 때 푸틴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의 북방경제에 전면적인 동의를 표하되 우리 정부가 실천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표한 것은 이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에 필자는 북방경제가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비상할지 쇠락할지를 결정한다고 답한다. 남북분단,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경우 외교-안보-경제를 분리할 수 없다. 외교-경협을 통해 블루오션을 찾고 한반도 평화도 이끌어야 한다. 이 점에서 극동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러시아와의 전략적 동반자관계 구축이 우리 경제를 살릴 출구이자 한반도평화를 담보할 제3의 길이 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EU가 있다. 1~2차 세계대전 후에도 유럽은 화약고였으나 지금은 유럽전쟁을 상상하기 어렵다. 경제동맹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EU는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통합된 유럽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경제동맹이 안보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이를 동북아에 적용하자는 것이 북방경제다. 우리로서는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에너지중심의 동북아경협을 통해 북핵을 제거하고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
첫째, 시베리아 가스관 연결로 북핵억제와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우리는 대륙연계에너지수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산자부에 따르면 지난해 단위당 천연가스 도입가격은 6.94달러로 독일의 4.93달러보다 무려 40.8% 비싸다.
기체가스를 얼려 해양수송한 뒤 기화시켜 사용하니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다. 대륙에너지의 안정적 수급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며 남북러 협력의 타당성을 높인다.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에너지-슈퍼-링 전략에도 부합한다. 북은 늘 핵-경제병진을 추구하고 있다.
북은 국제사회에 ‘핵 없이 어떻게 체제를 보장할 것이냐’고 묻는다. 때문에 북이 핵을 포기해도 국제사회가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방안이 필요하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다국적 에너지회사들이 컨소시엄에 참여하면 북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둘째, 북방항로를 통해 경제 도약이 가능하다. 지구온난화와 기술 발전이 접목돼 북극항로가 열리면 물류비용이 절감된다. 기존대비 최대 14일까지 운항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항이 지리적으로 북극항로의 시종점이 되기 때문에 해운업이 살아난다. 북극항로로 운항하려면 전용 선박이 필요한데 러시아 쇄빙 기술과 우리 선박제조기술이 협력하면 조선업도 살아난다.
셋째,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되면 태평양 해양물류와 유라시아 대륙 물류가 연결된다. 이미 나진-하산 간 약 54km의 철도가 운행되고 있다. 하산에 물류가 모여 나진으로 오면 배로 인접국가에 이동하는 루트가 개발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러 경협 공단을 세우고 공산품까지 수송하게 되면 경제성은 더 커진다. 최종 수혜자는 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방으로 가는 길은 아직 험하다. 반면 연결만 되면 우리 경제가 꽃길만 걷게 된다. 한러, 남북러 교류를 분리해 북방경제를 성공시킨다면 경제성장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동시에 꾀할 수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첫발을 뗐다. 북방경제 도약 여건도 조성되고 있고 양국 정부의 의지도 강하다. 이제 구체적 실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송영길 국회의원(인천 계양을·러시아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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