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만 보이는 산업현장
외국인 근로자가 국내 경제에 도움이 되고 내국인 실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지만 국내 청년·여성·중장년ㆍ고령자의 일자리를 잠식해 구직난을 심화시키고 임금 등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지난 1월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1% 증가할 때 국내 근로자의 임금은 0.2~1.1% 감소한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본보는 외국인 근로자 100만 명 시대를 맞아 외국인 근로자 취업 현황과 불법체류자 문제 등을 짚어보고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외국인 근로자가 미치는 영향, 한쪽으로 치우친 20대 국회 외국인 근로자 법안 발의,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외국인 근로자의 국내 일자리 잠식이 기우인지 현실인지, 현실이라면 대안은 무엇인지 점검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1] 내국인 설 자리 사라진다
7일 오전 10시께 의정부시 민락동 A 아파트 공사 현장. 장대 같은 장맛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사장 내부에서 망치 소리가 날카롭게 울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100여 명의 근로자들이 현장에 투입되지만 이날은 비가 오는 바람에 약 20여 명만 내부공사에 한창이었다. 빗방울이 거세지자 한 무리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비를 피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현장 작업반장 K씨(67)는 “전체 근로자 중 70~80% 정도가 외국인 근로자이고 동남아와 조선족이 반반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보니 젊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내국인 근로자보다 훨씬 일을 잘 한다”고 설명했다. A건설업체 대표 H씨(46)는 “건설현장 근로자 대부분이 외국인 근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틀공, 철근공, 콘크리트공 등 기능공 자리는 이미 외국인 근로자가 차지하고 있고 일부 현장 관리직을 외국인이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며 “오히려 현장 잡부 등을 국내 고령자들이 맡는 상황이 건설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장 기능공의 일당은 17만 원에서 최고 30만 원에 이르고 기능공 바로 아래 경력직이 평균 14만~15만 원, 잡부 10만~11만 원에 달한다.
같은 날 오후 2시께 포천시의 B 섬유 공장. 수 십 대의 편직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자 새하얀 원단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공장 내에는 기술 책임자인 내국인 한 명이 기계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있었으며 생산 현장에는 5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원단을 나르고 포장하기를 반복했다.
올해 4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오게 됐다는 S씨(29ㆍ필리핀)는 “한국에서 한 달간 버는 돈이 필리핀에서 1년간 버는 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면서 “필리핀에 두고 온 부인과 세 명의 아이들이 그립지만 한국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어 행복하다”며 흘러내리는 땀을 연방 닦아냈다.
이 회사는 전체 30명의 구성원 중 외국인 근로자가 20여 명이다. 이들 중에는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섬유제조업 특성상 인건비가 저렴한 불법체류자들도 있다. 그마저도 경력이 쌓이면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떠나버리기 일쑤여서 기술이 부족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업체 사장 K씨는 “우리 같은 작은 제조업체 사정상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당장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면서 “내국인 근로자들이 기피하는 제조업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기술만 있으면 임금이 금방 뛰기 때문에 공장 운영이 쉽지 않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국내 외국인 근로자 100만 명 시대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발표한 ‘2016년 외국인고용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는 96만 2천 명으로 전년에 비해 2만 5천 명(2.6%)이 증가했다. 2013년 76만 명에서 3년 만에 20만 명이 늘어났다. 이 중 경기·인천 취업자 수는 40만 3천 명으로 전체의 41.8%에 달한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광업 및 제조업에 43만7천 명, 도소매 및 숙박·음식점업 19만 명, 사업·개인 공공서비스 18만 7천 명, 건설업 8만 5천 명, 농림어업에 4만 9천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외국인 근로자가 지속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다 보니 불법체류자 수도 매년 20만 명을 넘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국내 불법체류자 수는 22만 510명으로 지난해 같은달(21만 3천980명)에 비해 3.1% 증가했다. 2014년 부터 꾸준히 20만 명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인원을 합치면 그 숫자는 더 커진다. 이들 중 대부분이 국내 취업을 위해 ‘불법체류’를 선택한 만큼 전체 외국인 근로자 수는 이미 100만 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산업현장에서 사실상 내국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현장 임금이 적은게 아닌데 젊은 내국인들은 힘든 일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며 “이젠 조선족도 건설 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이미 서비스업으로 이동했고 건설현장은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와 고령의 내국인 근로자로 양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산업현장의 근로 환경, 임금, 주거 등과 관련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면 중장년과 고령자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산업 현장에는 무궁무진하다”고 밝혔다.
구윤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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