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지자체들이 내놓는 정신질환자 대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는 LH의 임대주택 250개를 경증 환자들에게 지원키로 했다. 또 중증 환자 관리 인력을 대폭 늘려 배치하기로 했다. 수원시는 제1부시장 직속으로 관련 TF팀을 구성했다.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협력체계 구축, 임시 주거지 확보, 자립촉진비 지원 등의 논의를 시작했다. 수차례에 걸쳐 대책 마련을 촉구해 온 본보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또다시 강조하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정작 정신질환자를 빼놓고 논의되는 정책 입안 구조다. 입법 기관인 국회 구성만 보더라도 그렇다. 신체 장애인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있다. 시각 장애인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도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자 또는 그 가족을 대표할 수 있는 비례대표는 배정하지 않는다. 입법 기관인 국회부터 이러니 정신질환자ㆍ가족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틈이 없다.
이런 폐해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이번 정신건강보건법 개정 혼란이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위한다는 법 개정이었다. 법 개정의 첫째 당사자는 당연히 환자ㆍ가족이었다. 퇴원 이후 초래될 거소, 치료 등의 문제가 모두 이들의 문제였다. 하지만, 개정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이 반영됐다는 정황은 없다. 듣지 않았거나 듣는 시늉만 한 것으로 보인다. 환자와 가족들은 의견도 못 내보고, 법 개정의 피해만 떠안은 셈이다.
관련 단체가 추정하는 정신질환자 수는 650만명이다. 이 중에 조현병 환자가 50만이다. 현존하는 어떤 환자군(群)보다 많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거대한 사회 문제다. 국가 및 지방 정부의 정책 수립에 가장 위에 놓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우선은커녕 정책 순위에서 밀리고, 예산 편성에서 밀린다. 그리고 정책을 논의하는 테이블에서조차 밀리고 있다. 정신질환자 의견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것인가.
노인들 임플란트도 해주고, 틀니도 끼워주는 나라다. 치매 환자 돌보겠다며 수백억원의 예산을 책정하는 나라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들어섰다며 자랑한다. 이를 지켜보는 650만명의 정신질환자와 그보다 많을 가족들이 뭐라 하겠는가.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라고 동의하겠는가.
정신질환자 단체 관계자가 있다. 정신질환을 극복해 지금은 성공한 사회활동가다. 그런 그조차 입에 달듯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밟혀도 꿈틀도 못합니다.” 소외받는 정신질환자ㆍ가족의 현주소가 함축된 탄식이다.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정책 입안 과정에 정신질환자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질환 특수성에서 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면 가족대표들을 참여시키는 방법도 있다. 국가가 안 하면 지방부터라도 시작하기 바란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