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공 신익희 선생의 탄신 123주년 기념행사가 11일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 신익희 선생 생가에서 거행됐다.
이날 행사는 신익희 선생이 추구했던 민주주의 정신을 기리고 민주주의의 소중함과 광주인으로서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광주시와 광주문화원이 함께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조억동 시장, 임종성 국회의원, 이문섭 시의회의장, 박기준 문화원장과 각급 유관기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행사는 광주시립광지원농악단의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식, 광주오페라단과 한가람예술단 한범택씨의 ‘한량무’ 등 축하공연으로 진행됐다.
한편 신익희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탄금대 전투에서 순국한 신립 장군의 10대손으로 1894년 7월 11일 광주에서 태어났다. 한성외국어학교와 와세다 대학을 졸업 후 독립운동에 투신, 중국으로 망명한 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조직을 위한 비밀회의에 참가하고 임시의정회 회의에서 국호, 관제, 정부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 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임시정부에서는 외무총장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에는 대한독립 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건국 후 필요한 인재 양성을 위해 국민대를 건립하고 제헌국회의원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무투표로 당선되며 같은 해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또 1953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 대관식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친선사절로 우방 각국을 순방했으며 재야세력을 규합해 민주당을 창당, 최고위원에 취임했다. 이후 대통령 후보로 국민의 절대적인 신망과 지지를 받으며 유세를 펼치던 중 1956년 5월 5일 향년 63세로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으며 신익희 선생의 생가는 경기도 기념물 134호로 지정됐다.
광주=한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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