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우리 사회의 모든 부조리와 부패사슬의 정점에 있는 전관예우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사법부의 전관예우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병리현상이다. 특정대학출신이 전체 사법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특정부서 출신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독식하는 상황이다 보니 전관예우는 한국의 독특한 ‘인맥문화’와 맞물려 있다.
얼마 전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다. 모 후보자가 자신은 “전관예우를 한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본인의 경험칙상 전관예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답변해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한 적이 있다. 사람마다 경험과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넘기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실제로 전관예우는 여러 가지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지난 2014년 대한변협이 변호사 1천100명을 대상으로 전관예우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89.5%가 “전관예우가 있다”고 대답했다. 또한 판사와 검찰 출신 176명에게 설문조사를 해 보니까 64.7%가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최후의 권리구제 기관인 대법원도 전관예우에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기각된 현황(상고심 심리불속행)을 보면 민사사건의 경우 총 1만4천183건 중 심리불속행이 9천926건으로 전체의 70%를 차지 한 것을 비롯해 △가사사건 85% △행정 사건 74% △특허사건 72% 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됐다.
일반인이 상고를 준비하려면 인지도 구입해야 하고 상고이유서도 작성해야 하고 다리품도 팔아야 하는 등 비법률가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전체 사건의 70%가량이 기각되어 많은 국민은 판결이유도 받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상고장에 대법관출신 변호사의 이름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즉,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면 기각률이 크게 떨어져 대법원 재판부가 사건을 꼼꼼히 읽어보고 심리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돈이 없으면 사법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 국민이 좌절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번 인사청문회 당시 대법원에 ‘대법관출신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의 기각률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으나 “해당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 제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초적인 현황조사도 하지 않고 있으니 문제해결이 될 리 없다. 그렇다면 전관예우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재판부가 법이 정해놓은 양형을 엄격히 준수해 선고형량을 정하면 되는 것이다.
양형은 법으로 정한 것으로 법적 안정성을 위해 예측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동일한 사건에서 양형이 들쑥날쑥하면 누가 재판결과를 수긍하겠는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런 양형 기준이 엄격히 지켜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그것이 어렵다. 지난해 전체 사건에서 양형 기준 미준수비율, 즉 법에서 정해놓은 형량보다 낮게 선고한 비율이 9.5%에 이르고 있다.
또한 경제사범 특히 뇌물죄의 경우, ‘양형 기준 미준수비율’은 전체평균보다 3배나 많은 26.8%에 달했다. 우리나라 재판부가 경제사범에 얼마나 관대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법원은 각종 범죄에 있어 감경사유로 피해자 또는 유가족 합의 여부, 뉘우침, 초범, 사회적 공헌도 등 여러 사유를 들고 있다. 심지어 음주까지 심신미약상태로 보아 감경사유로 추가하고 있다. 이렇게 선고양형에 있어 재판부의 재량권을 폭넓게 인정하다 보니 전관변호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사법부의 전관예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과 부패의 고리를 바로 잡을 길은 사실상 없다.
‘전관변호사’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돈이 많으면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는 사회에서 사회적 규범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겠는가.
함진규 국회의원(시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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