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물류社)의 대규모 허위 세금계산서 발급 사건이 예사롭지 않다. 인천계양경찰서는 실물거래가 있는 것처럼 가장, 1천억 원대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한 혐의로 현대글로비스 전직 A과장(46)을 지난 10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현대글로비스 법인과 관련자들의 범죄 혐의 입증을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계열사로 정의선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재원 마련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수사 귀추가 주목된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3년 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거래처인 B플라스틱 도매업체에 플라스틱 원료를 공급한 것처럼 꾸며 340억 원 상당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업체는 다른 C플라스틱 도매업체에 플라스틱 원료를 공급한 것처럼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했고, C업체는 같은 수법으로 다른 업체 7곳에 또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발행된 허위 세금계산서 액수는 1천200억 원대로 불어났다. 경찰의 수사 방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A씨가 단순히 매출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인지, 또 다른 하나는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관행과 관련, 정부의 규제 대상인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수사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자주 거명되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억 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집단 가운데 오너일가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비상장사는 20%)를 초과하는 계열사의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 원 또는 연간 매출의 12% 이상일 경우 공정위의 규제 및 과세 대상이 된다.
현대글로비스의 주식 지분은 정의선 부회장이 23.2%, 정몽구 회장이 6.7%를 보유, 이들 지분을 합치면 29.9%다. 공정거래법 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30%)를 피할 수 있는 지분율이다. 공정위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건 오너일가의 경영권 편법 상속과 불투명한 지배구조 고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재벌 오너나 친인척이 지분을 가진 계열사를 만들고, 이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의 편법 상속을 막자는 거다. 지난해 기준 현대글로비스 매출 중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은 67%에 달한다. 2007년엔 그룹 계열사 간 내부거래 의존도가 87%에 달해 공정위로부터 9억여 원의 과징금 부과 명령을 받기도 했다. 경찰은 이런 상황에서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이 회사 측 주장대로 매출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술책인지를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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