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한국당의 남은 전술 - 진내포격(陣內砲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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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2월 14일. 청룡부대 3대대 11중대 진지로 월맹군이 진입했다.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육박전이 계속됐다. 실탄이 떨어지자 삽과 곡괭이로 싸웠다. 다음날 새벽까지 싸움은 계속됐다. 마지막 순간, 최후의 작전이 전개됐다. 후방의 포병에게 부대 좌표를 알려줬다. 아군 진지에 아군이 쏜 포탄이 비 오듯 떨어졌다. 그제야 전투는 끝났다. 적군 243명을 사살한 우리 측 승리였다. 아군 15명도 사망했다. 중대원 191명이 전원 특진했다.

한국 전사(戰史)에 전설로 남은 전투다. 진내포격(陣內砲擊)의 전형이다. 이 전술을 쓸 땐 조건이 있다. 아군 진지에 적군이 진입했을 때다. 그리고 더 이상 버텨낼 수단이 없을 때다. 이 전술을 쓸 때 각오해야 할 결과도 있다. 피아 모두 포격의 희생이 될 수 있다. 아군의 피해가 훨씬 커질 수도 있다. 결국은 사즉생의 승부수다. ‘나도 죽겠다’는 각오로 결정하는 최후 수단이다. 청룡부대의 승리는 이런 생명 포기의 결기가 가져온 기적이었다.

한국 보수는 썩어도 준치라 했다. 대선에서 1%P 이상 밀려난 적이 없다. 중앙권력을 내줘도 지방권력으로 보상받곤 했다. 변치 않는 50%가 그렇게 보수를 지켰다. 그런데, 그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24%라는 대선 득표율도 돌아보면 기적이었다.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7월 둘째 주 여론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14.4%다. 더불어민주당 53%와는 비교 거리가 안 된다. 또 다른 보수 바른정당(6.1%)도 또 다른 진보 정의당(6.5%)에 짓눌려 있다.

여론조사는 차라리 낫다. 더한 몰락은 현실 정치다. 야성(野性)을 보여야 할 청문회에서 한국당은 사라졌다. 언론이 보도한 의혹을 확인하는 데 급급했다. ‘사회주의자’라는 색깔론에 매달리다 본전도 못 찾았다. 확인 한 된 의혹제기로 역공을 당하기도 했다. 무능한데다 전투력까지 없었다. 야당에 주어진 권한도 못 살렸고, 국민이 준 의무도 못 지켰다. 여당 의원이 “힘들게 되신 분들이 일 잘 한다”며 비웃는다. 이쯤 되면 거의 끝에 온 듯하다.

원죄(原罪)다. 그들도 알고 국민도 아는 원죄 때문이다. 청문회가 중계되는 화면 밑에 이런 댓글들이 붙었다. ‘니들이 무슨 자격으로 청문을 하느냐’ ‘아직도 국회의원 하고 있느냐’…. 어디엔 ‘누나에게나 가라’는 비난도 달렸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글이다. 그 지근거리에 섰던 친박(親朴)을 향한 글이다. 이 원죄가 한국당을 짓누르고 있다. 청문회를 주도할 권한을 빼앗아 버리고 있다. 지금 한국당은 제 몸집에 휘청대는 유령 정당이다.

공교롭게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는 주목할 만한 조각(組閣)이 있었다. 견제와 균형의 끝을 보여주는 마크롱 대통령의 1기 내각이다. 18명의 장관 가운데 남성 9명, 여성 9명이다. 정확히 배분된 양성 평등이다. 정치적 균형도 가히 기계적이다. 사회당 소속을 내무장관ㆍ외무장관에 앉혔고, 공화당 소속을 재무장관ㆍ농업 장관에 앉혔다. 모두를 끌어안은 포용력이 부럽다. 균형을 이끌어 낸 정치 환경이 부럽다. 우리는 그러지 못해서 더 부럽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보수의 재건을 말한다. 한국 정치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때조차 한국당은 거론되지 않는다. 원내 107석의 거대 야당이지만 보수의 미래에서 생략되고 있다. 대오각성(大悟覺醒)을 다짐해도 지지율은 15%고, 육참골단(肉斬骨斷)을 약속해도 지지율은 15%다. 박 전 대통령 비리로 무너지더니, 대선 패배로 몰락하고, 청문회 무능으로 잊혀가고 있다. 한국당은 이렇게 사라지는가. 환생의 길은 끊어진 것인가.

잔인하지만 유일한 전술을 말해 줄까 한다. 청룡부대가 진지를 잃었듯이 한국당은 정권을 잃었다. 월맹군이 밀려왔듯이 진보가 밀려왔다. 그때 청룡부대는 진내포격을 선택했다. 이제 한국당도 당내포격(黨內砲擊)을 택해야 한다. 아군의 포탄에 목숨을 맡겼듯이 당내 정풍에 당 운명을 맡겨야 한다. 그 냉혹한 포격의 내용은 두 가지다. 책임 있는 중진 퇴출, 그리고 박근혜 정부 수혜자 퇴출이다. 해 내도 망할 수 있다. 못해 내면 반드시 망한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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