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석물은 사후(死後) 세계를 주제로 만들어진다. 보는 이들은 당연히 죽음을 상징하는 형상으로 받아들인다. 있어야 할 곳을 따진다면 사자(死者)의 옆 묘지다. 일반 주택가에, 그것도 무더기로 모아 놓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이 도심에서 빚어졌다. 고양시 삼송테크노밸리 내 휴식 공원 얘기다. 99㎡ 크기의 이 공원은 입주 기업의 직원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다.
밸리 사업단은 지난해 말 조각품 전시업체인 ‘동숭갤러리’와 조각품 전시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후 올 초 휴식공원에 20여개의 조각품을 설치했다. 모두가 묘지에서 파내온 것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동물 형상의 석물이다. 오랜 세월 풍화로 인해 석물의 색깔까지 거무튀튀하다. 공원 주변은 밤이면 발길이 끊기는 곳이 됐다. 급기야 입주한 인근 기업 관계자 20여명이 ‘묘석 철거 서명’에 들어갔다.
조형물 논란은 비단 이번뿐이 아니다. 서울역 앞 고가 보행로에 설치된 ‘서울로 7017’에 ‘슈즈트리’도 논란을 빚었다. 조각품이 아닌 실제 헌 신발 3만 켤레를 모아 만든 작품이다. 시비(市費) 1억3천900만원을 들여 만든 조형물이다. 2015년 임진각에 세워진 ‘평화의 발’도 논란거리다. 북한의 지뢰도발 사건을 상징한다며 높이 1m짜리 발을 형상화해 비난을 사고 있다. 관광객들이 ‘흉하다’며 고개를 돌린다.
조형물 논란의 중심에 ‘예술성’이 있다. 작가나 제작업체들은 하나같이 작품에 깃든 예술적 작품성을 강조한다. 예술성이란 화두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고, 계량화하기도 어려운 영역이다. 일반 시민들이 쉽사리 평가할 분야가 아니다. 조형물 제작업체는 이런 예술성을 부각시켜 ‘기획비’ ‘구성비’ ‘작가료’ 등의 명목으로 회계처리를 한다. 업체나 작가 입장에서는 ‘적어 내는 게 시공비’가 돼버리는 셈이다.
이런 업계의 관행과 행정기관의 방치가 조형물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책은 있다. 우선 철저한 예산 집행 내역을 추적해야 한다. 이를테면 슈즈트리에 쓰인 헌 신발 구입비용을 산정할 필요가 있다. 짐작건대 거의 헐값을 줬거나 거저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양 삼송테크노밸리 휴식공원에 설치된 석물도 마찬가지다. 화장 문화가 확산되면서 기존 묘지에 쓰였던 석물, 석묘들이 마구 버려지고 있다. 이런 소재들의 구입 경로, 가격 등을 철저히 따지면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조형물 설치에 앞서 해당 지역 시민들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를 운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형물의 제작은 예술가가 하지만 조형물을 향유하는 것은 지역 주민이다. 당연히 조형물에 대한 의견을 말할 자격이 있다. 지자체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 조형물 제작자와 담당 공무원의 의견만 맞으면 조형물이 확정된다. 만일 시민 의견이 반영됐다면 슈즈트리, 석묘 등의 흉물들이 도심에 등장했겠는가.
철저한 예산 추적과 시민 참여만이 폭주하는 조형물 논란을 끝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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