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당시 피해 상황을 돌이켜 보자. 서정우 병장(하사 추서)과 문광욱 이병(일병 추서)이 전사했다. 서 병장은 대피호로 몸을 피하다가 파편에 맞아 숨졌다. 문 이병은 대피호에서 잠시 밖으로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서 병장은 대피호 300m 지점에서, 문 이병은 대피호 바로 앞에서 전사했다.
연평도 대피호가 갖는 특이한 용도가 있다. 민간과 군인이 함께 사용한다는 점이다. 다른 지역 대피소의 주목적이 민간인 대피용인 것과 다소 다르다.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히 군사 시설로 간주한다. 연평도 포격에서 그 정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군 시설과 함께 대피호가 집중 포격 대상이 됐다. 그런 집중 포격으로 서 병장과 문 이병이 사망한 것이다. 그런 만큼 연평도 대피호는 군사시설의 요건을 충족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군과 정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2010년 이후 최신식 대피호 7개를 지었다. 백령도(26개)와 대ㆍ소청도(9개)도 함께 만들었다. 그런데 연평도에 만들어진 서너 개 대피호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 만들었다. 콘크리트벽을 쌓고 그 위에 흙 마대 등으로 덮었다. 지표면에 나무를 식재했다고는 하지만 대피호 존재는 한눈에 드러난다. 유사시 적 폭격에 목표가 될 게 뻔한 상황이다.
본보 지역에 대한 연평면 관계자가 이렇게 설명했다. “대피호는 지상이든 지하든 상관이 없다. 콘크리트 두께가 40cm이며 이를 덮고 있는 복토가 60cm로 공중에서 핵무기가 폭발해도 버틸 수 있는 구조다.” 이해하기 어렵다. 맞은편 북한의 진지는 해안 동굴이나 산속에 요새화돼 있다. 연평도 포격 당시 우리 측 K-9 자주포가 무력화된 것도 이런 땅속 은폐 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버젓이 드러난 우리측 대피호가 문제없다니 무슨 말인가.
혹시 예산이 부족했는가. 대피호 42개를 짓는 데 투입된 돈이 530억원이다. 평균 잡으면 1개소 짓는데 12억6천만원씩 들어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하를 파지도 않았고 지상은 흙 마대로 덮는 공사였다. 과연 적절한 예산 투입이었는지 따져 봐야 할 일이다. 혹여 예산 낭비가 있었다면 시공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고, 예산 부족이 있었다면 예산 투입을 재고해야 할 일이다. 이참에 서해 5도 대피호 시설을 총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연평도 포격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그런 곳에 설치된 대피시설이다. 최대한 은폐돼야 하고 안전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의 생명과 군인의 전투력이 지켜진다. 우리가 보기에 연평도 대피호는 허술하고 안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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