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미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과 관련이 있죠.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한국미술계의 정체성 논쟁도 동시대 미술활동이 지나치게 서구 지향적, 서구 모방적으로 흘러가는 데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성’의 문제는 자칫 편협한 지역주의나 형식주의에 처할 위험도 없지 않아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재와 주제를 잘 선택해야만 하거든요. 김경인 작가는 시대와 현실의 문제가 곧 ‘한국성’과 직결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한국성’ 탐색은 그 이전과는 다른 문제의식이었어요. ‘한국성’은 사실 구체적 명제이면서 매우 추상적인 명제이기도 하거든요. 그것은 한국미술의 미적 정체성의 문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는 ‘한국성’의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어요. 결국 그가 선택하는 것은 ‘소나무’였죠. 그는 “90년 초 한여름을 정선에서 머물면서 작품구상을 하던 중 몰운대에 자주 들렀는데 그 곳에는 육백년 된 노송 한 그루가 정말 멋진 자태를 지니고 있었고 그 나무에 한국적 조형성이 담겨있다는 가설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한 나무는 그것으로 천문, 지리, 생물의 아카이브예요. 한국의 풍토에서 수십 수백 년을 자란 소나무는 성리학도 윤리학도 아니지만, 우리 민족은 그 나무에 빗대어 성리학을 세우고 윤리학을 고수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소나무를 그릴 때조차 형이상학적 관념주의를 배격했어요. 이 땅에 뿌리박은 소나무 그대로의 모습을 찾기 위해 그는 전국 팔도를 발로 누벼야 했던 것은 그런 이유죠. 그가 촬영한 사진집 파일은 실로 엄청나요.
그렇게 시작된 ‘한국성’의 미학적 실체로서 소나무 회화는 ‘해체된 주체’의 자기 혁명이라 할 수 있어요. 그 나무 스스로의 풍경은 그저 한 나무로서의 소나무일 터이지만 그에게로 와서 재현된 소나무는 신령한 것들의 불의 이미지로 등장하기도 하고, 민족의 한 바탈(本性)로서 대자유의 색채적 해방을 드러내기도 하며, 분단의 적의(敵意)를 품고 있으나 ‘통합적 주체’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또 그는 전통주의 미학에 천착하지 않고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그 안에 녹이고자 했지요. 그러므로 소나무는 상징어로서의 이 시대이며 이 현실이며, 이곳의 민중일 거예요.
글_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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