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파문 일으킨 총리의 ‘세종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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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 3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시 부남리, ‘새 도읍지’라는 뜻의 ‘신도안’에는 태조 이성계의 지시로 조선 왕궁 공사를 하며 여기저기 배치했던 주춧돌 94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돌의 크기나 규모로 보아 태조 이성계가 꿈꾸던 새 왕조의 비전이 얼마나 컸던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전국에서 동원된 수많은 인부들이 한창 공사를 하던 1394년, 갑자기 공사 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왜 그랬을까. 태조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던 권중화는 ‘산태극·수태극’의 계룡산 아래에 새 왕조의 터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뒷날 태종이 될 이방원의 신임이 컸던 하륜은 무악(지금의 연세대 일대)을 건의했다. 그러나 태조나 이방원 모두에게 영향력이 컸던 무학대사는 한양(지금의 경복궁 일대)을 추천했다.

 

계룡산 신도안을 반대하는 무학대사나 하륜의 주장은 가장 중요한 이유로 조운(漕運)을 꼽았다. 전국에서 세금(곡물)을 걷어 운반하기가 어렵다는 것, 즉 교통의 불편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풍수설’이 끼어있는 정치적 파워게임이 작용했다고 보는 면이 크다. 원래 고려 때도 개성을 떠나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한양은 李씨 왕조여서 고려의 王씨는 적지가 아니라는 주장에 좌절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계룡산은 鄭씨의 도읍지이기 때문에 李씨의 왕조가 터를 잡아서는 안된다는 것.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미 이 무렵 정치적 실세로 등장한 왕자 이방원의 계산된 야심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계룡산 신도안의 왕궁 공사는 중단되었고 오늘까지 그때의 버려진 주춧돌만 남아있다.

 

그런데 요즘 세종시를 비롯 충청권에서 행정수도 문제, 특히 내년에 있을 개헌안에 행정수도 이전을 넣는 문제로 논란이 뜨겁다. 이와 같은 불씨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수도 이전에 대해 다수 국민의 동의를 해주지 않을 것 같다”고 한 발언 때문이다.

 

특히 이 총리는 “수도는 헌법재판소에서도 관습 헌법이라고 했다”면서 “국민 마음속에 행정기능의 상당 부분이 세종으로 옮겨가는 것까지는 용인하지만, 수도가 옮겨가는 걸 동의해줄까 의문이다”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지역 시민단체들과 여·야 정치인, 그리고 언론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노무현 정권 때 통과된 행정도시를 MB 정권에서 정운찬 총리를 내세워 수정안을 추진, 충청도민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가져왔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과 당선 이후에도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는데 새삼 이런 발언을 하는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격앙되었다.

 

현정권이 행정수도에 대한 모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이총리 측은 전혀 다른 의도는 없으며, 절차상 문제를 이야기한 것이라며 발언의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총리의 발언이 이슈화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태조 이성계에 의해 공사까지 벌이다 취소되었던 도읍지의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고, 최근에는 행정도시를 산업단지로 바꾸려는 수정안에 대해 저항했던 충청도민들은 이 총리의 발언에, 그래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 총리 발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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