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황혼의 욜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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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팍팍해져서일까? 천륜이라고 하는 부모, 자식 간의 소송이 해마다 늘고 있다. 노부모가 자녀에게 부양료를 청구하기도 하고, 상속했던 재산을 돌려달라는 사례도 있다.

 

자녀들 교육비와 결혼비용으로 재산을 다 쓰고 정작 자신의 삶은 챙기지 못한 노인들이 빈곤 상태에 이르거나 파산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받기 위해 부양료 소송에 나서고 있다. 2006년 152건에 불과했던 소송 건수는 지난해 270건으로 10년 새 2배 가까이 늘었다.

 

생활비 청구뿐 아니라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을 되돌려 달라고 청구하는 소송도 증가했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증여한 20억원대 주택을 되돌려 주라고 판결했다. 

이것도 ‘부모를 충실히 부양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해도 된다’는 계약서를 써뒀기에 가능했다. 노후 봉양을 하겠다는 ‘효도 계약’의 물증이 없으면 대개 부모들이 패소한다. 이 때문에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녀에게서 재산을 좀 더 쉽게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불효자 방지법’이 추진되고 있으나 몇 년째 표류 중이다.

 

증여재산을 둘러싼 부모와 자식간 갈등은 더 이상 드라마 속 얘기가 아니다. 부모 봉양에 각서까지 쓰는 세태, 오죽하면 부모가 소송까지 했을까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부모ㆍ자식 관계는 점점 이해타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상당수 어르신들이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르신들 사이에 ‘쓰죽회’가 유행이다. 남은 인생, 가진 재산을 다 ‘쓰’고 ‘죽’자는 모임이다.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은퇴는 점점 빨라진다. 재산을 자식한테 물려준다고 대접받기는커녕 용돈도 제대로 못 받아쓰고, 궁상떨며 사느니 모아놓은 재산을 나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주택을 보유한 만 60~84세 노년가구 4명 중 1명은 ‘주택을 자녀에게 상속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조사도 나왔다.

 

‘쓰죽회’는 뉴노멀 중년(New Normal middle age)의 한 현상이다. 청년들만큼 활동적이라는 의미에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도 불린다. 많은 5070세대가 손자를 돌보는 시간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어울려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대학 평생교육원이나 노인복지관에서 만난 사람들과 취미활동도 즐기고 봉사활동도 한다. 그러다 보니 BC(복지관 커플)도 늘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지금 행복하겠다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는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식한테 부양의 짐을 지우지 않는 것도 부모가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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