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여름, 충남 금산에 내린 폭우로 건설된 지 10년도 안되는 교량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이 교량을 이용하던 차량들은 바로 옆에 있는 50년도 더 된 낡은 다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낡은 다리는 일본 식민지시대 놓아진 다리다. 어떻게 해서 50년도 더 된 다리는 멀쩡한데 현대식 콘크리트로 산뜻하게 건설한 다리는 10년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는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일제 때 다리를 건설한 일본의 건설회사가 금산군청에 공문을 보낸 것이다. 즉, 교량 수명이 다 되었으니 안전조치를 취하라는 것.
공문을 받아든 공무원들은 자기들이 건설한 교량의 내구연한을 일일이 챙기고, 공문까지 보내는 일본 건설사의 ‘사후관리’ 정신에 놀랐다고 했다. 이처럼 자기네 회사가 건설한 공사를 끝까지 확인 관리하는 일본의 기업정신은 본받을 가치가 있다는 감탄도 나왔다. 바로 이런 기업정신 때문에 일본의 잦은 지진에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것 아닐까?
1988년, 현재는 독립했지만 당시 소련 지배하에 있던 아르메니아에 진도 6.9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2만5천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그 다음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진도 7.1의 강진이 발생하였으나 인명 피해는 70명에 그쳤다. 아르메니아보다 더 큰 지진이었는데 피해는 비교가 안될 만큼 적었다. 이 밖에도 1976년 중국 하베이의 당산(唐山) 지진은 23초 짧은 순간에 24만2천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문제는 건물이나 교량을 교과서대로 충실히 시공을 했느냐, 날림으로 했느냐에 따라 피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러시아, 중국, 멕시코 등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공사 중 무너진 평택 국제대교가 그냥 그대로 완공되었다면 혹시 모를 지진이 발생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정말 이런 공사일수록 철저한 시공과 감리가 필요하다.
로마제국은 일찍부터 길을 뚫거나 교량을 놓는 것에 철저했다. 당시 도로 건설은 주로 군인들이 했는데 그 구간마다 공사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놓았다는 것이다.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도로공사에도 시공자의 명예와 연계시킨 것. 뿐만 아니라 로마를 가로지르는 테베레 강에는 25개의 다리가 있는데 대부분 1천년된 것이고 그중에는 2천년된 다리도 있다. 이렇게 오래된 다리이지만 별로 손대지 않고 지금까지 안전하게 이용을 하는 것이다.
서울 한강에서 발생한 1994년 10월의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지하철화재사건, 그리고 이번의 평택 국제대교 교각 상판 일부 붕괴사건 등 크고 작은 사고로 ‘안전 불감증’에 걸리기 쉬운 우리로서는 로마의 이야기, 지진 이야기, 그리고 일본 건설사들의 성실 시공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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