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법 제2조와 3조는 정부 직할로 두는 시·도와 시·도의 관할구역 안에 두는 시·군·자치구를 지방자치단체로 규정한다. 제93조에서 시장과 도지사를 시·도에 두고 시·군·구에는 시장·군수·구청장을 둔다고 했다. 먼저, 시(市)나 도(道), 군(郡)과 달리 구(區)라는 용어가 자기결정권을 갖는 공동체로서 지방정부의 성질과 격에 부합하는가. 시·도나 군은 다소간 경계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문화적, 경제적인 운명공동체 성격을 어렵지 않게 읽어낸다.
반면에 구는 사전적으로도 그저 ‘넓은 범위를 어떤 기준에 따라 여러 개로 나눈 각각의 지역이자 행정구역의 하나’라 정의된다. 우리에게 안 좋은 기억도 있다. 일제강점기 마을 단위를 하나의 구로 묶고 이를 관리할 구장(區長)을 편제했었다. 지금 마을 이장쯤 되는 구장에게 식민권력은 한 줌의 사법적·경제적 특권을 허락하여 일신과 일가 친인척이 제법 마을에서 위세를 구가하도록 한 셈이다.
단지 그래서일지는 몰라도 우리 대한민국 지방자치법상 자치구의 장은 장(長)도 지사(知事)도 수(守)도 아닌 청장(廳長)으로 규정돼 있다. 그렇다면 지방정부의 최고기관인 주민이 직접선거로 뽑고 지방정부 사무를 총괄하며 지방정부의 통할대표권(지방자치법 제101조)을 갖는 지위에 구청장이라는 명칭은 부합하는가. 우리는 수많은 청장들을 알고 있다.
우선 도(道) 관할구역에 있는 인구 50만 이상의 시에 둘 수 있는 이른바 일반 혹은 행정구의 책임자도 청장이다. 무엇보다 정부조직법상 각 부(部)에 소속되어 특정 소관 사무를 관장하도록 설치되는 중앙행정기관인 청(廳)의 책임자도 청장이다. 국세와 병무, 특허와 기상 등 특정분야 사무를 관장하기도 하고 새만금개발청 등 특정지역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또 권역별로 나뉘어 소속 중앙행정기관의 국가사무를 수행하는 일선에 특별지방행정기관들에도 수많은 청장님들이 계시다.
청은 기본적으로 법령이나 특정사무의 집행을 목적으로 하는 관청을 의미하고 그 책임자를 청장이라 한다. 그렇다면 지방정부의 최고기관인 주민으로부터 선출되어 행정업무뿐이 아니라 통할대표권을 갖는 자치구의 장을 행정기관의 책임자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온당할까. 지방자치가 유예돼 있던 임명직 관료시절의 빛바랜 유물은 아닌가. 지방자치의 근본원리는 민주주의이고 그 골간은 공동체 구성원의 자기결정권인 직접선거다. 그렇게 선출된 지위에는 단지 행정업무가 이뤄지는 관청의 수장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통할대표권이 부여되는 것이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지방자치의 목적을 잘 수행하면 되는 것이지, 명칭 하나 가지고 그리 대수롭게 굴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한 게 백번 맞지만 이름과 실질은 서로 부합하는 게 더 좋은 일이다. 서울에 25개 자치구와 인천 8개 자치구(부산 15개, 대구 7개, 대전과 광주에 각 5개, 울산 4개) 등에서 2천만 넘는 주민들이 직접 선거로 뽑은 그들의 대표들을 단지 관청의 대표로 부르는 건 아무래도 아니지 싶다. 이거다 싶은 대안이 당장 떠오르지는 않지만 우선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다수의 지혜를 모아볼 필요가 있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얘기하는 차제에 짚어볼 문제다.
김상섭 인천시 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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