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애인 최초로 전원 성공 불편한 몸에도 포기 않고 도전
5천756m 킬리만자로에 등정
거친 숨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어진 듯 하다. 몸의 한계점은 지나간 지 오래다. “이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이병국 대장은 혼잣말을 연신해댄다. 일반 등반대원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얼굴 표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돌아갈 때가 됐다고. 하지만 옆에 장애가 있는 대원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할 수 있다’는 눈빛이 되레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었다.
지난 4일 킬리만자로(스와힐리어로 ‘번쩍이는 산’이라는 뜻)의 마지막 산장인 키보 헛(Kibo hut, 4천720m)에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때마침 인도양에서 떠오른 일출을 보면서 멘토인 일반 대원들도, 멘티인 장애대원들도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쏟아지는 눈물. 다시 한번 힘을 내본다. 7시간을 오르는 경사면도 이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정상. 스텔라 포인트(5천756m로 정상 등정 인증을 받는 시발점ㆍ정상은 우후르피크 5천895m)에 대원 26명 모두가 우뚝 섰다. 이렇게 ‘2017 킬리만자로 희망원정대(대장 이병국)’의 36시간에 걸친 사투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사)한국절단장애인협회(회장 김진희) 소속 장애인 14명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5명 등으로 구성된 희망원정대는 아프리카 대륙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를 한국 장애인 최초로 등반대원 전원이 정상 등정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이 장애의 몸인 대원들에게는 더욱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4천m에 이르자 일반대원, 장애대원 할 것 없이 ‘죽음의 문턱을 경험케 한다’는 고산병이 찾아왔다. 석상처럼 굳어지는 몸. 눈과 코, 입 어디든 열린 기관에서 쏟아지는 구토와 눈물, 콧물이 이들의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는 듯 했다.
호롬보 헛(Horombo hut 3천700m)에서 일반대원들은 조용히 회의를 진행했다. 이만하면 됐다고. 충분히 노력했다고. 하지만 장애대원들의 생각과 책임감은 달랐다. 여기서 포기하면 방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절단 장애인들에게 아무런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없다고. 그렇게 도전은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아름다운 등정은 ‘행복’이란 이름으로 킬리만자로 정상에 새겨졌다.
고교 1학년생인 손제인 대원(17ㆍ여)은 “선천적 장애로 두 다리 모두 의족을 사용하다보니 자갈과 바위, 화산재 등 고르지 못한 길을 장시간 걷는 등반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하지만 오로지 내 의지로 선택한 등정길에서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았고, 모든 절단 장애인에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싶었다”고 등정 소감을 밝혔다.
이병국 대장은 “고산병도, 장애도 원정대의 ‘책임감’을 꺾지 못했다”고 운을 뗀 뒤 “비장애인도 절반 이상이 못오르는 힘든 코스이고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산행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줘 한국 장애인 최초로 대원 전원이 아프리카 최고봉에 오를 수 있었다”고 기뻐했다. 이어 “앞으로도 현장이 아니어도 절단 장애인들이 세상 밖에서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2017 킬리만자로 희망원정대는 ㈔한국절단장애인협회가 주관ㆍ주최하고,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멘토를, 경기일보가 후원했다.
김규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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