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는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부결로 무색해졌다. 개혁을 바라는 민심의 기대는 오직 정략과 이득만을 추구하는 정당들의 행태 앞에 무너졌고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개혁,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개혁이라 할지라도 정당들의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좌절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개혁의 성공과 국익을 위해 정권을 잃거나 정치적 입지를 잃을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앞선 강연에서 슈뢰더 전 총리가 강조한 말이다. ‘유럽의 병자’라고까지 불렸던 독일을 위해 ‘아젠다 2010’이라는 개혁을 추진했고 그 결과 정권을 기독민주당(CDU)에 넘겨줘야 했던 그 다운 이야기이다. 슈뢰더 전 총리는 재임 기간 ‘개혁 조치는 정치적 자살’이라는 경고에 끊임없이 시달렸지만 결국 오늘날 독일을 만드는 초석을 다졌다.
슈뢰더 전 총리의 개혁 의지가 실현될 수 있었던 가장 큰 기반은 독일 정치의 연대와 협력의 문화 덕분이다. 독일은 연정이 아주 익숙하다. 1949년 아데나워 총리 취임 이후 연정을 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우리나라의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처럼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사회민주당(SPD)과 기독민주당(CDU)이 연정을 하는 대연정도 몇 차례나 있었다. 중앙정치권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서도 연정이 흔하게 이뤄지는데 어떻게 연정이 가능했느냐고 물을 때면 그들의 대답은 간명하다. “나라가(지역이) 힘드니 서로 힘을 합쳤다” 교과서 같은 대답이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양당제에 익숙해져 온 우리 정치가 하루아침에 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엄중한 안보 위기 속에서 명분 없는 장외투쟁으로 일관하다 국회법도 어기며 슬그머니 장내로 들어와 사상 초유의 임명동의안 부결에 큰 소리로 환호했던 한국당, 그리고 정략적 목적을 위해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준 국민의당 등 협치를 위한 대통령과 여당의 끊임없는 구애에도 협상에 나서기보다 언론을 통한 정치적 반대에만 매달리는 무책임한 야당의 행보에 과연 협치가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민이 바라는 개혁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협치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당은 국정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고 정부의 과감한 개혁을 뒷받침해야 하고 야당은 언론을 통한 정치적 수사와 자극적 언어 대신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야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르다면 언론과 미디어가 아니라 마주 앉아 치열하게 협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비단 집권여당과 그 세력만의 성공이 아니다. 5년 후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정부라는 찬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 정치가 크게 성장했다는 반증이며 개혁의 성공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의 실패는 국민도 대한민국의 경제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민주당은 개혁의지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더욱 겸허하게 갈 것이며 슈뢰더 전 총리의 말처럼 정치적 기반을 잃을 각오로 임할 것이다.
고장난명(孤掌難鳴,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협치는 여당 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국민이 바라는 개혁,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개혁을 위해 하루빨리 야당이 협상테이블에 함께 해 주기를 기다려 본다.
김두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김포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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