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방향감각과 인생의 성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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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전통적으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남향을 선호한다. 그래서 앞쪽 하면 남쪽을 가리킨다. 옛 서울의 앞산은 남산이고 정문은 남대문이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남쪽을 향해 있다. 경복궁 중앙에 있는 근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정전으로 그 앞마당을 조정(朝廷)이라고 한다. 

조정에서 조회를 할 때 임금은 근정전에서 남쪽을 향해 좌정하고 임금의 왼쪽은 동쪽으로 제일 앞에 왕세자가 서고 그 뒤를 정일품부터 순서대로 섰으며, 오른쪽은 서쪽으로 대군들이 앞에 서고 그 뒤를 종일품부터 순서대로 섰다. 그래서 임금의 왼쪽인 동쪽이 상석이 되고 서쪽인 오른쪽은 그 다음이다. 삼정승 중에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앞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임금이 남면(南面)하고 동쪽인 왼쪽을 우선시 하는 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의 전통적인 방향의식이기도 하다. 임금이 북쪽(북극성의 자리)에 앉아서 남쪽을 바라볼 때에 해가 떠오르는 생문방(生門方)인 동쪽이 임금의 왼편이 되고, 해가 지는 사문방(死門方)인 서쪽이 임금의 오른편이 된다. 그러므로 평상시에는 생문방인 왼쪽이 사문방인 오른쪽 보다 상석이 된다.

 

그러나 전쟁을 치르는 장군의 경우는 반대로 임금의 오른쪽이 상석이 된다. 노자의 도덕경에 따르면 전쟁에 이기더라고 많은 사람이 죽게 되고 슬피 애도하게 되니 승전의 예는 상례(喪禮)에 따른다. 전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므로 사문방인 오른쪽이 죽음에 더 가깝고, 그래서 상석이 된다. 따라서 오른쪽에 사령관인 대장군이 앉고 왼쪽에 부사령관인 편장군이 앉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이 앞쪽이라면 성경에서는 동쪽이 앞쪽이다. 동쪽은 해 돋는 쪽으로 성경에서는 ‘에덴’이 동쪽에 있다고 해서 인류 역사의 기점을 동쪽으로 표현한다. 예루살렘 성전(Temple)의 문도 동쪽으로 나도록 하였다. 사람들이 예배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올 때는 세상의 죄와 어두운 삶의 문제를 갖고 들어오지만,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세상으로 다시 나갈 때에는 해 뜨는 동쪽을 향해 소망을 갖고 나가도록 한 것이다. 영어의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는 말도 “해가 뜨는 곳”(Orient)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나 기업체 등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한다고 하는 것은 앞으로의 방향(진로)에 대한 예비교육이나 안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의 데살로니가 해안에는 브세파루스라는 명마(名馬)를 타고 동쪽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으로 된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이 있다. 브세파루스는 알렉산더가 선물로 받은 것인데, 얼마나 사납고 거칠게 날뛰는지 장군들조차 말을 다루지 못했다. 알렉산더가 직접 말을 타보겠다고 하자 장군들은 모두 위험하다며 만류를 하였다.

그러나 브세파루스가 자기 그림자에 놀라서 날뛰고 있는 것을 안 알렉산더는 말 등에 올라타자마자 고삐를 잡고 태양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태양을 향해 달려가니 그림자는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고, 브세파루스는 알렉산더에게 순종하여 세계를 정복하는 위대한 명마가 되었다.

 

일본 속담에 “서쪽을 향해가는 사람은 일생 동안 걸어가도 해 뜨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동쪽은 해가 돋는 곳이요 내일이 있는 곳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인생의 성패는 그림자에 연연하며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과거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내일을 향해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볼 것이냐 하는 방향감각에 달려 있다.

 

임봉대 인천시 박물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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