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안 산적해 있는데 과거로 회귀하는 정치

일촉즉발 국가 안보위기에도 여야 정치권은 정쟁만 일삼고 있다. 내달 국정감사를 앞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여야는 이명박(MB),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두 전직 대통령의 과(過)를 들추는 데 몰두하고 있다. 과거사를 놓고 벌이는 진흙탕 싸움에 국민들은 짜증스럽기만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25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부부싸움’ 등과 연결짓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MB정부 시절 발생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등 각종 의혹이 문서 등을 통해 구체적 형태로 드러나자 한국당이 궁지에 몰려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반전을 노린다고 비판했다.

이에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까지 나서 노 전 대통령 서거 논란에 가세했다. 최고위원회에서 “정 의원 발언을 두고 민주당이 침소봉대해서 문제를 키우는 것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뇌물사건’ 재수사 문제와 ‘640만 달러 범죄수익’ 환수 문제에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확전 자제 메시지이지만 홍 대표가 직접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관련 사건의 재수사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확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심각한 안보 위기에 10년 전 과거사를 놓고 싸우는 정치권의 구태가 개탄스럽다. 비극적 최후를 맞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부부싸움’ 운운한 정 의원의 태도는 옳지 못하다. 과거 보수정권을 ‘적폐’로 몰며 칼날을 들이대는 여권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권력기관인 검찰과 국가정보원뿐 아니라 거의 모든 행정부처가 적폐 청산에 매달리는 것도 걱정이다.

일례로 교육부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을 추적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킨다. 진상조사위는 내년 2월까지 역사 교과서 편찬 과정의 문제점을 찾는 활동에 나선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25일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 과정을 ‘친일(親日) 행위’에 빗대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교육계 일각에선 “국정 역사 교과서 편찬을 적폐로 규정한 것도 모자라 친일 행위에까지 빗댄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진상조사위 활동이 자칫 마녀사냥식으로 흘러갈 것이란 우려다.

부처마다 편을 갈라 과거사나 파헤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시국이 아니다. 적폐 청산이란 이름 아래 분열과 갈등만 조장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을 초청해 협치를 당부할 예정이라는데 이런 상황에서 대화며 협치가 제대로 될까 싶다. 여야는 당리당략을 넘어 국가 안보와 현안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과거로 회귀하는 정치로는 얻어질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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