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신고리 원자력 贊反을 세종대왕께 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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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허성도 명예교수는 우리 역사를 보는 눈을, 왜 조선은 망했느냐?의 자학적 관점에서 벗어나 조선은 어떻게 500년이나 왕조를 지탱할 수 있었는가?하는 긍정적 관점에서 보자고 말한다. 사실 한 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된 사례는 세계사에 흔하지 않다. 그러면 조선왕조가 이처럼 오래 유지된 힘은 무엇일까?

 

허 교수는 그 첫째로 ‘민의 수렴’을 꼽았다. 사실 암행어사 제도 역시 민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고, 조선시대 가장 큰 적폐로 지적받는 당쟁도 처음에는 민의와 명분이 아니었을까? 지금 걸핏하면 여론조사라는 것이 발표되는데 이 역시 이미 조선시대에도 행해졌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종대왕때 농사의 수확량에 대한 세금 책정에 관한 여론조사.

 

세종대왕은 기존의 세법을 고쳐 1결당 10되의 세금을 일정하게 정함으로써 관리들의 자위적 책정을 배제하자는 것이었는데 그 찬반을 백성에게 물어보게 한 것. 17만2천여 명을 조사한 결과 찬성 9만8천여 명, 반대 7만4천여 명, 그러니까 찬성이 57%나 나왔으니 개정안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조사대상 17만명은 당시 조선의 인구로서는 성인 남자만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전 국민이 참여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5개월이나 시간을 소비해야 했다.

 

당연히 방망이를 두드릴 것이라 기대했던 세종대왕은 의외의 결정을 내린다. 반대 7만4천여 명도 적은 숫자가 아니며 그들에게도 그만한 의견이 있어 반대를 한 것이니 전국적 시행을 보류하고 몇몇 곳을 지정, 시험적으로 시행하는 가운데 문제점이 있는지, 있으면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를 검토 후 전국적으로 실시토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반대했던 사람도, 찬성했던 사람도 모두 흡족하여 승복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백성을 흡족하게 한 세종대왕이야말로 이미 500년 전에 여론 정치, 민의 수렴의 수범을 보였다 할 것이다.

 

세종대왕이 1443년(세종25년)에 한글을 만들고도 반포까지 3년이나 걸린 것 역시 좀 더 시행과정을 거치면서 보완하려는 의도였고, 한글을 만든 목적 자체가 백성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요즘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결정지을 시민참여단의 최종 설문조사를 둘러싸고 제대로 찬반 의사가 공정하게 수집될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찬반에 대한 기초자료조차 시민참여단에 늦게 전달, 숙지할 시간적 여유가 너무 짧아 부실한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것.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9월16일 충남 천안에서 시민참여단 478명이 참석한 가운데 오리엔테이션을 가진 바 있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울산시민운동본부는 그 478명의 참여단 지역배분 비율을 문제 삼았고, 특히 해당지역 주민의견에 가중치를 주자는 의견까지 나와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고 그 대답은 500년 전 세종대왕이 세제개혁을 둘러싼 찬반 여론을 어떻게 했고, 그 결과를 어떻게 처리했기에 모든 백성이 흡족해했는가를 되돌아 보는데 있을 것이다.

 

말로만 세종대왕을 위대한 인물이라 떠들고, 그 정신을 본받지 않는 오늘의 우리를 대왕께서는 노하실까 두렵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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