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새천년, 유라시아에서 길을 찾다] 11. 실크로드 초원길을 달려 유럽으로 가다

中 싱안링 산맥서 흑해까지 7천km 광활한 초원… 유목민족의 고향이자 동·서 문명의 통로

시베리아 남쪽 지대를 연결하는 초원길은 몽골, 카자흐스탄, 유럽의 흑해 북안까지 동서를 잇는 유목민족의 고향이다. 사진=신춘호 유라시아 열차 탐사단
시베리아 남쪽 지대를 연결하는 초원길은 몽골, 카자흐스탄, 유럽의 흑해 북안까지 동서를 잇는 유목민족의 고향이다. 사진=신춘호 유라시아 열차 탐사단
■ 중국 대륙을 횡단하여 국경도시 호르고스에 도착하다

2017년 7월 12일 저녁 8시 중국 우루무치 역을 출발하여 다음 날인 13일 아침 7시 50분 호르고스 역에 도착하였다. 중국 동쪽 황해 연안의 롄윈강 역에서 출발하여 4천여 km의 거리를 기차로 이동하였다. 9일 만에 중국 대륙을 횡단한 것이다. 중간에 외교관과 기업인을 만나고 경제 현장과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며 달려 왔기에 무척 고되고 숨 가쁜 일정이었다.

 

호르고스는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에 있는 도시이다. 국경 건너편 카자흐스탄 쪽에 있는 도시 이름도 호르고스인 것은 이 도시가 원래는 하나의 도시였는데 둘로 나누어진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 신장 위구르와 카자흐스탄 지역은 같은 문화권으로 여러 유목국가들이 흥망 성쇠를 거듭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동부에 해당하는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이 청나라 때 다시 중국 영토로 편입되고, 서부에 해당하는 카자흐스탄 지역이 20세기 들어 쏘련 영토가 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호르고스 서쪽 지역은 카자흐스탄공화국의 도시가 되었다. 호르고스 동쪽 지역은 이전과 같이 중국 영토의 일부로서 국경도시로 그 기능을 수행하였다.

 

■ 위구르인의 도시 호르고스

호르고스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속하였기에 경계가 삼엄하였다. 호르고스 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 중간에 검문이 있었다. 택시 운전사가 검문하는 요원과 잘 아는 친구인지 서로 인사만 나누고 금방 통과하였다. 한국인 기업인을 만나기로한 호텔 입구에도 검색대가 있었으나 검색하는 이는 없었다.

 

호르고스 자유무역 지대 내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에게 현재 중국이 사드 문제로 한국 기업의 영업 행위에 여러가지 제한을 가하는데 여기에서는 불편이 없는지를 문의하였다. 한국 기업인은 조심스럽게 호르고스에는 위구르인이 많이 살아서인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위구르인이 세상을 보는 눈이 중국 한족과 차이가 있음이 느껴졌다. 13일 오전 짧은 시간 중국 국경도시 호르고스에 머물렀지만 호르고스 시민들의 의식 속에 호르고스의 역사 유산이 면면히 남아 있었음 알 수 있었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 실크로드 초원길을 기차로 달리다

카자흐스탄에 입국한 후 일행은 알마티와 아스타나에 각각 이틀씩 체류하고, 러시아로 이동하였다. 알마티에서 아스타나까지 열차로 이동하는데 1박 2일이, 아스타나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기차로 이동하는데 2박 3일이 소요되었다.

 

동서를 이어주는 실크로드 육상 로는 오아시스 길과 초원길이 있다. 오아시스 길은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을 지나 알마티에서 서남쪽으로 향하여 우즈베키스탄과 이란 쪽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우리가 흔히 실크로드하면 떠올리는 길이다. 우리 일행은 알마티에서 서북쪽으로 가서 러시아를 거치는 실크로드 초원길로 향하였다. 초원길을 달리는 철로 양쪽으로 인적은 드물고 초원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초원길은 시베리아 남쪽지대 스탭, 즉 초원을 연결하는 길이다. 초원은 동쪽 고비사막의 동쪽에 있는 싱안링 산맥에서 시작하여 몽골 초원, 카자흐스탄, 유럽의 흑해 북안까지 동서 7천km를 연결하는 유목민족의 고향이다. 끊임없이 초원이 이어지기에 유목민족이 이동하는데는 불편이 없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열차가 잠시 정차해 탐사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열차가 잠시 정차해 탐사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유라시아 대륙 동서 문명 교류는 14세기까지 아시아가 주도

이 길을 통하여 흉노족과 몽골족, 투르크인들이 동에서 서로 이동하였다. 흉노족의 이동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가져와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찬란한 서양의 고전고대 문명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중세 유럽의 시작이라는 서양 역사의 대변화를 초래하였다. 초원길이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13세기이다. 13세기 몽골 제국은 서쪽으로 침략을 계속하여 이슬람 문명권과 동유럽 일대를 장악하였다. 14세기 이전 유라시아 동서 문명 교류의 역사는 동쪽의 아시아가 주도권을 장악하고 서쪽으로 진출한 역사이다.

 

■ 15세기 이후 근대 역사를 만든 서유럽에 도착하다

탐사단이 20일 모스크바에 도착한 후 샹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고 다시 모스크바에 와서 독일 베를린 행 기차를 탄 것은 7월 23일이었으며, 벨라루스와 폴란드를 통과하여 24일 아침 베를린에 도착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을 거쳐 유럽의 서쪽 끝 포루투칼 호카 곶까지 가는 서유럽 횡단하는 일정이 남아있다. 이들 나라는 15세기 이후 유럽이 세계 근대의 역사를 만들어 갈 때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구상의 여러 문명들은 오랜 시간 독자성을 지니고 발전하였으나, 15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여러 문명들이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갔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문명권이 유럽이다. 15세기 이후 유럽이 주도하여 지구상 6대륙 문명이 모두 만났다. 

초원길의 석양.
초원길의 석양.
각 문명권은 유럽 문명과 만나면서 정치, 경제, 사회체제와 문화는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 영향을 받고 변화를 겪게 되며 그 영향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유럽이 각 문명권과 만난 방식은 침략, 그리고 식민지 지배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이 때 행한 폭력과 악행은 유럽 문명의 또 다른 모습이 ‘야만’임을 보여준 것이다.

 

유럽이 근대사를 주도하였지만 그 내부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16세기 후반은 스페인, 17세기 전반은 네덜란드, 후반은 프랑스가 주도하였고, 최종 승자는 영국이었다. 독일이 이 반열에 들어간 것은 19세기이고, 20세기에 독일은 기존 유럽 제국 제국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유럽의 위상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고 세계사의 중심은 미국으로 옮겨 간 것이다.

 

아스타나에서 모스크바 사이 정차역에서는 상인들이 물품을 팔고 있다.
아스타나에서 모스크바 사이 정차역에서는 상인들이 물품을 팔고 있다.
■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베를린은 역사적 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베를린은 동서로 분단되었다. 그 분단의 상징적인 장소가 브란덴부르크 문이다. 과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어서 과거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고 지금은 독일 통일의 상징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1791년 도시 성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도시가 점점 확장되면서 지금은 베를린 중심부에 자리 잡게 되었다. 나에게 브란덴부르크 문은 유럽 주도의 세계사가 종언을 고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역사는 미국 중심으로 넘어 갔기 때문이다.

 

■ 21세기 유라시아대륙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유럽은 20세기 후반 이후 점차 그 힘이 약해지고 있다. 20세기 후반 동아시아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아시아인들이 세계사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

2.JPG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 선두 주자는 일본이었으나 한국이 그 뒤를 이었고, 21세기 들어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G2 국가로까지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유럽은 그 체제가 내포한 여러 문제로 인해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유라시아대륙에서 힘과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진갑 유라시아 열차 탐사단장ㆍ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후원: 경기문화재단

1.JPG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