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용인시 한 주택 앞마당에서 삐라가 발견됐다. 북한을 찬양하고 남한을 비판하는 전형적인 북한 삐라다. 놀란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했고, 곧바로 경찰관들이 방문했다. 삐라를 건네받고 정확한 수거 장소 등을 확인했다. 집주인이 농담 삼아 ‘옛날에는 삐라 한 장에 공책 한 권씩 줬는데’라고 물었다. 경찰관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다 주면 감당을 못합니다. 요즘 삐라 신고가 많아 출동 안 할 수도 없고 힘듭니다.’ ▶그도 그럴게. 용인시 수지구 일대에서 삐라가 발견되는 것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수백 장씩 뭉텅이로 떨어지는 삐라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지난해 1월에는 2만여 장의 삐라가 용인과 인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지금도 광교산 북서면 능선에서는 곳곳에 널려진 삐라를 목격할 수 있다. 삐라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이 출동해 수거한 뒤, 군 당국에 넘긴다. 경찰로서는 본연의 임무가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고역이다. 언제부턴가 용인시가 겪고 있는 ‘삐라 공해’다. ▶16일 청와대 경내에 삐라가 떨어졌다. 춘추관 잔디밭에서 발견됐다. ‘김정은 최고영도자님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단호히 성명’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청와대 경비담당인 101단이 출동해 60여 장을 수거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올해만 11번째고 지난해에도 8차례 발견됐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국정원과 경찰이 합동 수사에 들어갔지만 정확한 살포 경위는 오리무중이다. ▶삐라 살포는 아주 오래된 심리 전술이다.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위선적 행동을 일삼는 교황을 고발한 그림을 뿌린 것이 시초라는 주장이다. 우리에겐 6·25전쟁의 기억과 함께 시작했다. 우리 국군과 유엔군 측이 집중적으로 살포했다. 인민군에 대한 투항권고가 주목적이었다. ‘루터 기원說’로부터 500여 년, ‘6ㆍ25 등장說’로부터 70여 년 지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 뿌려지고 있다. 그만큼 효과가 크다는 역설(逆說)일 수 있다. ▶하태경 의원(바른정당)이 떠오른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드론으로 평양 상공에 삐라 바다를 만들면 북한이 상당히 위협적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북제재 카드는 거의 다 소진됐으니 이제 심리전만 남아 있고, 이 심리전에 효율적 방법이 드론을 활용한 삐라 살포라는 얘기다. ‘핵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웬 삐라 타령이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 경내까지 수십장의 삐라가 뿌려지는 지경에 왔다. ‘삐라 반격’이라는 전술적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삐라 실은 드론’도 방안일 수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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